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잡스 유진 Jun 12. 2024

고마운 사람.

나보다 먼저 갱년기를 경험하는 남편 관찰읽기7

“올 때 대추랑 양초 좀 사 와.”

“다른 건 필요 없어요?”

“어, 그거면 돼, 다른 건 다 샀어.”

수업을 마치고 급하게 짐을 챙겨 차에 올라탄다. 아버지 기일이다. 

며칠 전부터 장보기를 시작했는데 아직 못 산 게 있다고 하신다. 

집 근처 마트에 들러 다시 전화를 해 필요한 게 없는지 묻는다. 그거면 된다면 하신다. 그거면 된다고는 하시지만 아버지를 위한 술도 산다. 평소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소주와 막걸리, 백세주. 결국 이 술은 우리가 마시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를 위한 것이라고 몇 병 더 챙겨 넣는다. 


계산을 마치고 짐을 실으려는데 전화가 온다. 둘째 동생이다. 

“언니, 어쩌지. 애들이 폐렴이래. 못 가게 됐다. 미안해서 어째.”

“어쩔 수 없지, 애들 약 잘 챙겨 먹이고, 잘 지켜봐.”

“어, 그래 언니 고생해.”

잠시 뒤 막내 동생에게 카톡이 온다. 

- 애가 열이 안 떨어지네, 희수씨도 몸이 안 좋은지 잠깐만 누워있겠다더니 못 일어나 ㅠㅠ

  어쩌지.... 빨리 가서 도와줘야 하는데.

- 어쩔 수 없지. 아픈데 어떻게 와. 진이 열체크 잘하고. 집에 있어. 우리끼리 하면 되니깐 걱정 말고.

어젯밤부터 열이 오르던 갓난쟁이는 다음날인 오늘까지 이어지나 보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거의 모든 준비를 해두셨다. 거기에 가족들이 먹을 음식까지 준비하시라 많이 바쁘셨을 거다. 동생네들이 못 올지도 모른다는 말에 괜찮다고는 하시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이신다.      


이어 남편도 퇴근해서 온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온 듯하다. 한 손에는 아버지를 위한 술이 들려있다. 

옷을 갈아입자마자 팔을 걷어붙이고 상차림을 돕는다. 시댁은 음식준비는 여자들이, 상차림은 남자들이 하는 풍경이 오랜 관습처럼 잡혀있다. 음식 준비를 마친 여자들은 음식을 내어줄 뿐 상에 올리는 것은 집안의 남자들이다. 


상차림이 익숙한 종갓집 장손은 우리 집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경상도식 제례법을 어릴 때부터 익혀온 남편은 혼자서도 척척 차린다. 

“홍동백서!” 아무렇게나 올려 두려는 나에게 또 한마디 건넨다. 

“알아!”

알지만 놓을 때마다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붉은색도 아닌 것이 하얀색도 아닌 애매한 음식들이 있다. 특히 과일, 떡, 전류들.

“작은 앞상! 제주그릇! 향 어딨어. 초는?”

“바쁜데 계속 시킬 거야?”

시댁에서 하던 행동을 그대로 하는 남편에게 버럭 성질을 낸다. 

성질은 내지만 남편의 말에 따른다. 이 모든 수고로움을 함께 해주는 남편이 고마워서다.      



“아이들 어디 갔어?”

“수업 있다고 방금 나갔어요.”

“불러.”

“부르라고요?”

“어, 할아버지한테 절 올리고 다시 가라 해.”

“네” 

큰애와 둘째에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라고 전화를 한다. 응수하지 않은 건 예禮를 중요시하는 경상도 남자는 지켜야 할 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보아 온 것들은 이 남자에겐 법이다.      


우리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아버지 제사상에 절을 올린다. 주방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 그리고 나. 

이 남자의 뒷모습이 이렇게 든든했던가. 


새삼 다시 보인다. 나는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기대고 있다. 큰일을 치를 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남편을 많이도 의지한다. 결혼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때도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대신해 일처리를 도맡아 했다. 아버지의 묘를 시댁 산에 모시자고 한 것도 남편이다. 



고마운 사람이다. 남편이기 이전에 인생에 고마운 그런 사람이다. 


이 마음이 잠시, 오래가길. 

작가의 이전글 길을 잃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