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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Oct 17. 2024

어쩌면 토끼는 배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을지도

다시 생각해 보자고요. 


이사 온 동네 근처에는 재래시장이 없다. 대형마트 두 곳이 있어 생활에 불편함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시장에 가고 싶다. 겨우 알아낸 시장이 2일과 7일에 열리는 5일장이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에 제법 규모가 큰 시장이 열린다. 이른 아침부터 나서지 않으면 무료로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에 주차 공간이 없다. 

그곳에 가면 어릴 적 경험한 정서를 조금 느낄 수 있다. 나뿐이 아니라 도시 태생인 아이들도 시장 먹거리와 살아있는 닭, 토끼, 관상어도 볼 수 있어 좋아한다.      

달력을 보니 7일.

장이 서는 날이다.

“엄마 토끼 보러 가자. 흰 토끼.”

“좋아~~!! 흰 토끼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한 번 가보자.”

몇 개월 만에 장으로 향한다. 모두 이번 장에는 어떤 먹거리와 구경거리가 있을지 기대에 부풀어 흥이 오른 모습이다. 

역시나 오픈 전부터 주차 대란이 시작되었다. 겨우 한 자리를 찾아 비좁은 공간에 운전자만이 내릴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고 세웠다. 먼저 내린 아이들은 차들이 이동하는 공간에서는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교육받아 와서인지 한쪽 쪽에 얌전히 서 있었다. 

몸을 틀어 우측 끝까지 가면 살아있는 동물들을 가지고 나온 할아버지가 계실 것이다. 이번 장의 목적은 토끼 보기였기에 솔솔 풍겨오는 핫바(핫도그) 냄새를 뒤로하고 토끼 파는 곳부터 걸어 들어갔다. 

“엄마~, 토끼 없어.”

먼저 도착한 둘째가 막내 손을 잡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걸어 들어오는 나를 향해 말한다. 

‘그럴 리가.’

“닭밖에 없어.”

도착해서 보니 진짜 닭들만 십 여마리 정도 보인다.

“아저씨, 토끼 없나요?”

“토끼, 저~~ 쪽에 가 봐요.”

아저씨 손끝은 장 한가운데쯤을 가리키고 있다

“감사합니다. 얘들아, 가보자.”

왔던 길을 되돌아 반대편 끝쪽 가까이 가보니, 관상어와 토끼를 파는 아저씨가 보인다.

“토끼다.” 이번에도 재빨리 도착한 둘째의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

“엄마~~, 그런데 흰 토끼가 아니야~~~, 얼룩 토끼야.”

얼룩말은 익숙한데 얼룩 토끼는 단번에 상상이 가지 않았다.

도착해서 보니 전체적으로 흰색바탕 털의 토끼는 맞는데 두 귀와 눈두덩이 주변, 그리고 등 두 군데 정도가 검은색으로 되어 있었다. 얼룩말? 아니 얼룩 토끼라고 하기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비율이 부족하지만 온전한 흰털이 아니기에 얼룩이라고 표현해도 되리.      

좁은 철장 안에서 토끼의 특기인 깡충깡충도 보여주지 못하고 겨우 세 발짝 뛰었다가 다시 제자리, 그리고 빙글빙글 테두리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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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 토끼를 약삭빠르고, 꾀가 많은 동물로 인식하게 되었는가.

아마도 유년시절부터 읽어온 동화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토끼가 나오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토끼와 거북이, 수궁가, 토끼의 재판 정도일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자신의 재능을 믿고 잘난척하다가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거북이에게 큰코다치는 이야기, 수궁가는 벼슬을 준다는 이야기에 혹해 바닷속 용왕님을 만나러 갔다가 꾀를 내어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 토끼의 재판은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준 선비를 살리기 위해 지략을 펼친 토끼이야기다. 

토끼는 고양잇과와 같은 오종종한 얼굴과 빠르게 깡충깡충 뛰는 달리기 실력으로 사람들의 눈에는 꾀 많고 약삭빠른 이미지를 갖게 된 듯하다. 

철장 속 토끼를 보면서 토끼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 토끼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자신의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세 가지 이야기 중에서 특히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토끼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구겨주는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재능을 믿고 끝까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누가 봐도 거북의 끈기와 인내에 박수를 보낼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토끼의 입장에서도 한 번 생각해 봤음 한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쩌면 토끼가 거북을 기다려 준 것은 아닐까.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거북의 도전을 받아들인 것부터가 토끼 나름의 배려다. 

예상대로 거북은 토끼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토끼는 평소대로 뛰고, 거북도 하던 대로 달렸다. 

보나 마나 한 결과에 토끼는 나름 거북을 배려해 주려 잠시 기다려 준 것일지도. 

비슷해야 끝까지 해보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차이가 너무 나는 상황에서 거북은 포기할지도 모른다. 거북에게 희망을 주자. 

그래서 나무 아래서 기다려 준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느린 거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햇살은 따스하고 이내 졸음이 쏟아진다. 지나가면서 깨워주겠지. 거북은 착하니깐. 잠에서 깨면 거북에게, ‘우리 승패를 떠나서 날도 좋으니 그저 같이 걸어보자. 그렇게 말해야지.’ 거북을 믿는다.      

느릿느릿 거북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도전해 보겠다고 선언을 한 이상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데 저 언덕 위에 희끗희끗 복슬복슬한 토끼의 털이 보인다. 토끼가 아직 저기 있다면 해 볼 만한 게임이다. 친구들에게 토끼를 이기고 오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그냥 내려가면 놀림감이 될 것이 뻔하고, 가보자. 지더라고 결승점에는 다녀왔노라 하자. 느릿느릿.

토끼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조금 더 속도를 높여본다. 그런데 이상하게 토끼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나.’

느릿느릿 다가가니 어느덧 토끼가 바로 앞에 있다. ‘내 달리기 속도가 그렇게 형편없지 않나 보군. 토끼와 비슷해졌어, 역시’     

가까이 가보니 이게 무슨 일인가. 토끼가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다. 

‘끈기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잠을 자고 있는 토끼를 뒤로 한 채, 풀 스치는 소리라도 날까 조심조심 한 발 짝씩 움직이며 결승점을 향해 걷는다.      

“다 왔다!! 역시 난 할 수 있는 거북이었어. 토끼를 이겼다.”     

거북이 환호하는 소리에 놀라 낮잠에서 깬 토끼는 언덕 위 결승점에 있는 거북을 바라본다. 




“뭐야, 혼자 간 거야?”     

토끼는 생각한다. 

배려라는 거에 대해. 남을 배려한다는 것.

나 자신을 내려놓으면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수궁가의 토끼는 생각한다. 

남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다신 그러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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