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잡스 유진 Oct 19. 2024

모순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자녀를 대하는 방식은 묘한 역설로 가득하다. 한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길 바랐던 존재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요당한다. 그 전환점은 언제였을까?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보다 멈추라고, 가만히 있으라, 세상은 위험한 것 투성이라고 수없이 반복했던 그 시간이 사라지기라도 한 듯, 이제는 '왜 아무것도 안 해?'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어린 시절, 부모의 목소리는 끊임없는 주의와 경계의 목소리였다. "하지마," "안 돼." 손을 뻗으면 바로 제지당하고, 발을 디디면 미리 막힌다. 그렇게 자라는 동안은 세상이 위험투성이로 보인다. 세상은 그저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만 하는 곳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경계가 사라진다. "왜 하지 않아?" 이제 더 이상 다치지 말라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목소리로 변한다. 아무 일도 시도하지 않아, 어느 것도 되지 못한다면, 그건 곧 문제가 된다.      


부모의 태도는 세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른 목소리들과도 일치한다.  학교, 사회, 직장, 심지어는 친구들까지도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때 아이 아니, 우리는 어쩔 줄 모른다. 한때는 '하지마'라는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았던 그 아이는 이제는 울타리 밖으로 뛰어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배워야 할 시기에 배우지 않았고, 도전을 받아들여야 할 시기에 거부를 배웠다. 그러니 막상 세상이 '왜 도전하지 않느냐'고 묻기 시작할 때, 그 대답이 쉽지 않다.


세상이 가득한 모순 속에서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어쩌면, 그 모순을 자녀에게도 물려주게 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마"와 "왜 안 해" 사이의 균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자신의 위치를 잃고 헤매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