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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연습

by 생각잡스 유진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비 오는 아침.
“다녀올게요.”라는 딸아이의 인사를 설거지 소리에 묻힌 채 흘려보냈다.
창밖을 보니 제법 굵은 빗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다.
“우산은 챙겼어?”
대답이 없다.
비누 거품이 잔뜩 묻은 손을 대충 훑고, 현관 쪽으로 급히 향하는데 둘째 아들이 말한다.
“누나, 이미 나갔어.”

현관문을 열고 이름을 불러본다.
대답 대신 빗소리만 길게 퍼진다.
급히 뒷베란다 쪽 창문으로 달려가 내려다보니, 딸아이는 1층 현관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한 손엔 실내화를 들고, 다른 손으론 얼굴을 가리며 급하게 걷는다.

“민서야! 우산 가져가야지! 비 와!”
“엄마, 나 늦었어!”
“아직 8시 10분이야. 어서 올라와!”

현관 신발장을 열어 우산을 꺼내 들고, 눈에 띄는 아무 신발이나 꺾어 신은 채 계단을 내려간다.
1층에서 마주친 딸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늦었다니까, 엄마. 내가 알아서 한다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 말이 귓가에 오래 남는다.

문득, 내가 열여섯이었을 때가 떠오른다.
나 역시 얼마나 많은 “내가 알아서 할게”를 내뱉었는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어른들이 나를 아이 취급할 때마다 억울하고 답답했던 감정이 생생하다.
부모의 걱정은 그저 간섭처럼 느껴졌고,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막상 엄마가 되고 나니 마음은 자꾸 아이 곁을 맴돈다.
조금만 더 챙겨주고 싶고, 조금만 더 도와주고 싶다.



지금, 나는 어른이 되어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있다.
그저 말 잘 듣는 아이가 최고라고 믿었는데,
말 잘 듣는 아이가 과연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문득 의문이 든다.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넘어질까 봐 걱정되고,
너무 개입하면 아이의 판단력과 자립심을 해칠까 또 걱정이다.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아직 정답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아이는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을 통해
자신만의 삶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지만,
이제는 조금씩 손을 놓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 힘을 길러주기 위해,
조금씩 뒤로 물러서야겠다.


내가 손을 놓아야, 아이는 스스로 걷는다.

나는 오늘부터 믿는 연습이다.



비 오는 아침, 딸아이의 뒷모습이 조금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만큼, 아이는 자라고 있다는 뜻일 테다.

그리고 나도 아직 자라고 있다.
서로의 성장을 믿고 기다리는 법.
오늘도 그렇게 배워나가며,
하루하루 부모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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