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남편의 옷장을 열었다가 멈칫했다.
작은 옷장 한 칸. 그 안에 계절별 옷이 전부 있었다. 반팔, 긴팔, 바지 몇 벌, 외투 두어 벌. 그 무심한 단순함이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순간, 내 옷장이 떠올랐다.
아니, ‘옷장들’이라고 해야 할까.
안방 붙박이장부터, 드레스룸까지 그 많은 옷 속에서 오늘도 나는 “입을 옷이 없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그날 이후로 내 삶이 왜 늘 복잡한지, 왜 항상 머릿속이 어수선한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남편은 특별한 철학을 말하지 않는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원래 그렇게 살아왔다.
가지지 않는 것. 쌓아두지 않는 것.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나는 그와 반대였다.
잘 살고 싶었고, 예쁘고 싶었고, 부족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무언가를 갖게 되었다.
좋아 보이는 옷, 괜찮은 가방, 유행하는 화장품, 놓치기 싫은 기회들 모두 내것으로 내 삶으로 들여왔다.
하나하나 손에 쥐다 보니 결국 삶 전체가 무거워졌다.
남편의 옷장을 본 이후로 조금씩 사지 않는 연습을 해본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남편. 아이들, 조카에게 선물을 해본다.
언젠가는 입겠지 하며 묻어두었던 옷들을 정리해 보아겠다.
버리는 게 아니라, 잊고 산 공간을 여백을 되찾는 느낌일 게다.
단순하게 산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산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삶으로 들여야 하는지 ‘명확하게 아는 것’.
그 기준을 세우는 일이 먼저이다.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어떤 감정에 머무를 것인지.
선명한 기준이 필요하다.
쉽게 착각한다.
많이 가질수록 든든할 거라고, 바쁘게 살수록 가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오랜 기간 살아보지 그 반대였다.
너무 많이 가지면 진짜 중요한 걸 잃어버린다.
너무 바쁘면 내 마음이 뭘 원하는지도 들리지 않는다.
이제 나는 ‘덜 갖기’로 삶을 다시 짜보고 있다.
덜어낼수록 가벼워지고, 쓰지 않아도 되는 마음을 저축하게 된다.
남편의 조용한 옷장 한 칸.
그 속엔 말없는 철학이 있었다.
비워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걸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