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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Feb 20. 2022

아메온나(雨女), 우녀

제가 비를 몰고 다닌다고요?

비를 몰고 다니는 여자.

일본어로 아메온나(雨女)는 비를 부른다고 하는 일본의 요괴입니다. 그리고 비를 몰고 다니는 여성도 이렇게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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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을 의식하기 시작하다


내가 태어난 생일은 음력으로 칠월 칠석, 그러니깐 누구나 알고 있는 견우와 직녀가 만난 전설의 날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촌수가 먼 친척임에도 삼촌이라고 부르던 분이 제 생일을 축하한다며 종합선물세트를 사 들고 오셨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던 날입니다. 

“유진이 생일이 칠석날이어서 이렇게 비가 오는 거야.”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만나는 날에 재회에 기쁨이 눈물이 되고 그것이 비가 되어 내린다는 겁니다.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그때 이후로 제 생일주간이 되면 기상 일보를 보게 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기억상으로는 40번이 넘는 생일날 절반 이상이 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생일 전날, “내일이 내 생일이야.” 선물을 받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고, “내일 분명 비가 내릴 거야.” 황당한 이야기를 들은 친구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어오면 견우직녀 이야기를 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움직이면 비가 내린다?


즉흥적으로 결정된 일정이 아닌 계획을 한 행사나 여행을 가는 날엔 어김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학창시절 소풍, 체육대회, 수학여행 일정에 비가 내린 기억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낀 자리엔 자주 비가 내렸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큰 행사인 결혼식에 비가 내린 것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결혼식 날짜를 잡으려고 찾아간 곳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날을 잡더라도 비가 내릴 거야. 칠석에 태어나서 비를 몰고 다니거든.” 

전날까지도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던 5월이었는데 결혼식 당일에 비가 내리는 걸 보고 아연실색을 했습니다. 야외결혼식을 하자는 이야기가 오가다가 혹시나 비가 오면 어쩌냐는 걱정에 급하게 실내로 변경했습니다. 결혼식이 있는 11시 30분, 정확히 30분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날씨를 맞힌 점술가라도 된 마냥 내리는 비를 덤덤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힐 일은 식이 끝난 이후부터였습니다. 

신혼여행지는 남편이 선택했습니다. 남태평양 서부에 있는 섬나라 ‘팔라우’였습니다. 앙코르와트에 가서 툼 레이더 여전사처럼 전투 신혼여행을 가고 싶었던 저는 직장인들은 휴양지를 원한다는 남편의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여행경비를 남편이 모두 지불하기로 했기에 의견을 따랐다기보다는 그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받게 없었습니다. 

바다색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으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생전 입지도 않는 비키니도 준비하고 바다 풍경에서 한껏 돋보일 요란한 원피스도 준비했습니다. 

5시간 정도 비행을 하고 도착한 팔라우.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국만 내리는 비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분명 비행기에 탈 때 한국의 하늘은 매우 맑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네가 또 거기 있는 거야.’ 340여 개의 산호섬으로 유명한 팔라우, 스킨스쿠버들의 천국, 아름다운 산호와 열대어들을 즐길 수 있는 푸른 바다. 이렇게만 알고 있었나 봅니다. 열대 해양성 기후의 팔라우는 5월부터 11월까지가 우기인 나라입니다. 왜 하필 5월부터인 겁니까?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비가 연속해서 오는 날은 없었다고 가이드는 말합니다. 4일 일정에 3일간 비가 오고 하루 반짝 해가 떴습니다. 축축하고 습한 날씨, 계속되는 비에 외부 일정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대부분 호텔에 머물렀습니다. 지금 기억에도 팔라우는 그냥 비가 많이 내리는 섬나라입니다. 하루 잠시 볼 수 있었던 영롱한 에메랄드빛의 바다 풍경의 기억은 비와 함께 씻겨 나갔습니다. 최악의 신혼여행이었습니다. 말수가 적은 새신랑과 종일 호텔에서 놀기도 힘들었고요. 다녀온 사람들이 극찬했다던 팔라우는 신혼여행지를 선택하는 예비 신부, 신랑들에게 콕 집어서 가지 말라고 당부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계획했던 일정의 장소에 저만 나타나면 비가 옵니다. 우연의 일치가 맞아도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가끔은 무섭기도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곳 제주도도, 제가 오기 전까지 그렇게 날씨가 좋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고 비가 눈으로 바뀌며 이런 날씨 최근에 처음 본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습니다. 오늘도 일기 예보에는 3시간 간격으로 눈비가 올 거라고 합니다.      

아메온나, 일본에서 처음 들은 단어입니다. 여행을 간 장소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합니다. 

‘아메온나, 또 비를 몰고 왔구나.’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엄마가 신이랍니다. 어떻게 비를 데리고 다니냐고요.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쯤으로 상상을 하더라고도. 그리고 이렇게 이름 지어주었습니다. 


“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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