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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May 08. 2022

그림, 나를 마주하는 시간

이방인이 가기 좋은 그곳

그림들


2001년 여름

이 도시가 낯선 이방인은 

동경의 국립근대미술관을 찾는다. 

그리고 안도한다. 

편안하다.


그 이방인은 바로 나다.


몇 년만에 집어든 그림관련 책,

 <그림들을> 보며

동경과 서울의 미술관에서 보았던 반가운 작품들을 보며 

기억 서랍 구석에 넣어 두었던

내가 그림을 보기 시작한 이유를 꺼내보았다. 



낯선 동양의 도시에서 얼핏보면 

눈치챌 수 없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면 

가이징(外人, 외국인) 티가 나는

이방인이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일본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을까?

티 안 나게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었던 것 같다. 

그래야 그들의 생활 깊숙한 곳에서 친구의 자격으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이다.


이방인이 숨기 가장 좋은 곳
"미술관"

 


그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냥 숨고 싶었을 뿐이다. 

조용하고 옆사람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

그리고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 말이다. 


주말 오전, 도쿄 시내를 걷다가 유명 화가의 작품이 한창 전시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귀스트 르누아루, 책읽는 소녀, 피아노 치는 소녀들


그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그림의 주제와 색감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르누아르의 그림이 

나의 첫 그림경험이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미술교과서 이외에 실물 그림을 감상할 기회는 없었다. 기껏해야 학교내 전시회나, 그림좀 그린다는 지역 화가들의 전시를 볼 기회가 있었을 뿐, 거장들의 그림은 처음이었다. 


황홀했다. 그래, 이 표현이 맞을 것이다. 

미술관 특유의 고요함과 그림을 향해 쏘고 있는 은은한 조명빛, 그리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래서 그림으로 표현된 작품들이 이루는 절묘한 분위기, 황홀 그 자체였다. 


한가지 더, 자유롭게 감상하는 사람들...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고, 앉아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고. 

그림감상과 함께 감상하는 사람들의 행동도 면밀이 살피며 처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그렇게 나의 미술관 숨기가 시작되었다. 


서울에 돌아온 나는

일이 없는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미술관으로 향했다. 

하루에 몇시간이나 말을 했던 강사일은 주말에는 혼자있고 싶게 만들었다. 


그곳에 가면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친절한 해설기와 도슨트가 있다.

그리고 그림에 관심이 뺏긴 관중들은 

다른 사람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림에 한참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도슨트과정수업에 참여하고 갤러리에 면접까지 보러 다녔던

그런때가 있었다. 

그림을 사랑하던 그때. 



그렇게 계속되던 미술관 숨기 사랑은

결혼과 동시에 막을 내렸다.


내가 사랑하던 모네와 마네, 그리고 루느아르

다시 만날 날을 그려본다. 



SUN 도슨트, 그림들
SUN 도슨트, 그림들
SUN 도슨트, 그림들
SUN 도슨트,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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