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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Feb 18. 2022

당신의 별명은?

오늘도 어김없이 어릴 적 기억부터 시작해볼게요. 


어릴 적 별명은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왜냐하면, 너무나 단순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별명이거든요. 

눈치채신 분은 아시겠지만, 저의 별명은 ‘손오공’입니다. 이유요? 생각하시는 그거 맞습니다. 단순히 ‘손씨’라는 이유에서였죠. 그래서 아래로 두 동생도 커서 물어보니 학교 다닐 때 별명이 손오공이었대요. 이럴 수가…. 단순하긴….

그나마 조금 다르게 부른 친구들이 ‘손수건, 손수레’였어요. 어휘력이 뛰어나다고 칭찬해야겠죠.


이름으로 놀리는 건 초등학교 시절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죠. 친구 중에 ‘김새나’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름 자체가 놀림거리 별명이 되었답니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아들을 원하셨던 아버님이 딸인 것에 실망하셔서 ‘김샌다.’라고 하신 것을 여아에게 맞게 ‘새나’로 바꿨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후배 중에 세리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하고 같이 간 미용실에 원장님 딸로 보이는 4살 여자아이가 있는 거에요. 아이를 예뻐하던 후배는 반가워하며 인사를 했더니 대뜸 이름이 뭐냐고 묻습니다. “어, 언니 세리야.” 옆에서 듣고 계시던 원장님 왈 “지우야, 세리알지? 세리공주 할 때 그 세리..”, “어, 알아. 근데 뭐야. 얼굴이 공주가 아니잖아.” 순간 적막이 흐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한 후배를 보고 지켜보던 저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해버렸답니다. 상황이 너무 코믹했거든요. “미안하다. 세리야.”



이 외에도 기억나는 별명 에피소드들이 여럿 있지만,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초등시절 내내 손오공으로 불리던 저는 중학교에 가서는 ‘발유진’으로 발전합니다. 손의 반대 발이라는 단순한 사고를 중등들은 할 수 있다는 거죠. ‘애쓴다. 너희들.’ 중학교 때 하나 더 기억나는 별명은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떠도는 별명이라며 한 친구가 알려준 것이었습니다. 학교종이 땡땡땡하면 집으로 쪼르르 가버린다고 ‘땡순이’랍니다. 어쩌냐. “집에 어린 동생들이 기다린다.” 맞벌이 가정이었던 우리 집은 맏딸인 저에게 동생을 돌볼 의무? 같은 것이 있었죠. 학원도 다니지 않던 때라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서 청소를 돕고 동생을 돌봤습니다. 기특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고등학교 때 별명은 지금 생각해도 왜?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불러준 별명이니 기억 더듬기 해보겠습니다. ‘히틀러’ , 별명이 히틀러였습니다.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언어 중 그때 당시 교과서에서 배운 마르크스와 히틀러가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마르크스’, 반장이었던 제가 ‘히틀러’였습니다. 교실 분위기를 공산주의 국가처럼 만들었다나 어쨌다나 그러더라고요. 자율학습시간에 감독 선생님들께서는 저희 반에는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제가 알아서 다 수습하거든요. 떠들거나 딴짓하는 친구들은 모조리 복도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었고, 친구들도 그래주길 바랬으니깐요. 소중한 시간에 남아서 공부하는데 옆 친구를 방해하는 행동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강압적인 반장의 모습에 불만인 친구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다툼도 있었고요. 그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체육대회가 있는 날, 응원단에서 현수막을 제작해왔는데 ‘마르크스와 히틀러’반이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습니다. 제 별명을. 지금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은 별명입니다. 실제 인물의 역사적 사실을 잠시 제쳐두고요.      



대학 때도 별명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기별로 별명이 다 달랐네요. 기억 더듬기가 이래서 재미납니다. 

대학 때는 별명이 세 개나 있었네요. ‘유식이’, ‘꼴통’, ‘교주님’

유식이는 무식의 반대 유식이 아닙니다. 하는 짓이 여자보다는 남자에 가깝다며 유진이라는 이름이 여성스러워서 차마 못 부르겠다며 남자 이름을 지어준 겁니다. 처음 들은 친구들은 지식이 풍부해서 ‘유식이’라고 부른다고 착각하기도 하더라고요. 나쁘지 않은 별명입니다. 

‘꼴통’이라는 별명은 마흔이 넘은 지금도 동기, 선배들 사이에 불리는 별명입니다. 엉뚱하다고요. 예상 밖의 행동을 자주 한다고 어느 순간 저를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즐겼습니다. 원래 성격이 진지하지 못하고 다소 덤벙거리고 엉뚱하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죠. ‘꼴통’이라는 별명이 불릴 때 후배들 사이에서는 ‘교주님’으로 불렸죠. 모범이 되는 선배라고요. 사고방식과 행동을 배우고 싶다며 교주로 모시겠다는 녀석이 한 명 있더니 그 뒤로 줄줄이 몇 명이 더 생겼습니다. 캠퍼스에서 마주칠 때마다 ‘교주님’하고 인사하는 통에 창피해서 혼이 났습니다. 이 친구들은 지금도 전화를 걸면 ‘교주님’입니다.     

 

일본에 있을 때는 ‘걸어 다니는 사전’이란 별명도 잠깐 갖긴 했네요. 일본어 사전을 통째 외운 듯이 모르는 단어가 없다고요. 그땐 그랬나 봅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직장생활을 하던 20, 30대 때는 특별히 기억나는 별명이 없네요. 결혼한 지금은 저희 아이들이 불러주는 별명 ‘악마 엄마’, 이건 아이 셋 키우는 어머님들이시다면 이해하실 별명입니다. 하루에도 열댓 번은 제 목소리가 담장을 넘나들죠. ‘소리 지르기 전에 미리미리 해라’     



지금 생각해보면 별명도 관심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특징을 캐치해 유사한 캐릭터로 불러주니깐요.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불러주기 힘든 거죠. 

사랑받고 살아왔다는 게 새삼 느껴집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별명으로 불리며 살아오셨나요?

한번 저와 같이 기억 더듬기 해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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