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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May 20. 2022

파친코를 읽고 기억하다.

에피소드2

타국으로 오는 길에 너무 긴장한 탓일까.

평소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성격인데 다음날아침 늦게까지 잠을 잤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모는 머리맡에 무언가를 두고 나가신다. 그리고 쪽지 한 장.

당분간 용돈으로 쓰라며 만엔짜리 지폐를 두고 가게로 나가셨다. 

'이게 아닌데, 민폐를 끼치려고 온게 아닌데...'

다디미 6장 정도되는 방을 선뜻 내어주신, 명자이모.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용돈까지 챙겨주시니 죄송한 마음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집안을 둘러보고선 구석구석 청소를 했다. 바쁜 이모와 이모부 대신 집안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재일교포 2세인 이모부와 한국에서 시집온 이모. 나이차이가 많아 보이는데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만나게 되셨는지는 모른다. 부모님으로 부터 어떠한 이야기도 들은 바가 없었다. 일본에서 대형트럭을 운전하는 이모부와 오사카 다이쇼쿠 시장 안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이모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여느 일본인들과 다를바가 없어 보였다. 저녁이 되어 녹초가 되어 들어온 이모, 한 시간 뒤 힘겨운 모습으로 돌아온 이모부의 모습에 일본에서의 생활이 녹녹치는 않다는 것을 조금은 알아차렸다. 

시원한 맥주 한 캔과 역사드라마는 이모부의 피로를 달래주는 유일한 휴식이었다. 덕분에 옛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역사를 전공하긴 했지만 일본사를 정식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었다. 한 공간 안에서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이모부와는 일본어, 한국에서 시집 온 이모와는 한국어로 대화를 했다. 


"유짱, 같이 갈 데가 있어."

이모부는 휴가를 내셨다고 한다. 

"어디에 가시나요?"

"유짱, 이렇게 일본까지 왔으니 일본어학원에 다니면서 제대로 배워서 가는게 어때."

사실, 워킹홀리데이는 공부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비자이지만 나에겐 학비를 낼 만한 큰돈이 없어 먼저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으려 했다. 돈을 모아 어학원을 다닐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모부를 따라간 '국제어학원', 입학 서류를 쓰고 10만엔이라는 돈을 지불해 주시는데 죄송한 마음에 어떻게든 갚고 학비를 직접 벌어 학교를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한국에서 1년간 동경어를 공부하고 온 나는 일할 수 있는 곳이 극히 적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말못하는 유학생들은 주로 청소나 설거지와 같은 일을 한다고 했다. 대화를 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업종에는 유학생과 불법체류로 일본에 온 외국인들이 주로 있다고 했다. 오사카는 특유의 간사이어를 사용해서 그동안 배웠던 동경어를 듣고 말할 기회가 없었다. 어학원 선생님들도 수업때는 동경어를 쓰시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때는 어김없이 관사이어를 쓰셨다. '또랑또랑, 왕왕왕, 라렝라렝'으로 들리는 일본어는 눈앞의 행동으로 눈치빠르게 이해하는 척 했을 뿐 사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다. '1년이나 공부했는데, 이럴 수가...'



"이모, 저 왔어요."

"어? 왜 집으로 안가고 여기로 왔어?"

"도와드리려고요."

어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이모의 가게로 향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어서 벌이도 없고, 계속해서 이모와 이모부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상황이라 이모의 가게일을 도울 생각으로 찾아갔다. 

기특하다며 이렇게 가게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  어릴 떄부터 눈치가 빨랐던 나는 이모가 가게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손님에겐 어떤 말을 하는지 놓치지 않고 배웠다. 

판매에 필요한 일본어와 반찬의 재료를 설명하는 문장들을 공부하듯 외웠다. 

일주일정도되니 혼자서도 판매가 가능할 정도의 자신감이 생겼다. 

이모는 안심이 된 듯, 혼자두고 시장을 나가보거나 외출을 하시도 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반찬 진열장 앞에서서 손님들에게 들어와서 반찬들을 시식해보라고 소리치던 때였다. 

한 일본인 할아버지가 지나가며

"닌니쿠쿠사이."라며 인상을 쓰신다. 아주 기분나쁜 표정을 짓기도 하셨다. 

닌니쿠라면 마늘인데.. 쿠사이는 냄새.....'마늘 냄새가 난다.'는 의미였다. 

그 후로도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한마디씩 하신다. 

21세기, 그곳도 한일관계가 매우 좋았던 2000년. 여전히 한국인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일본인을 처음 대했을때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슬펐다. 

'할아버지는 왜 한국인들에게 적대적일까.왜...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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