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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May 19. 2022

파친코를 읽고 기억하다.

에피소드1

오전 9시

오늘도 야키니쿠(한국식 고기구이집)집으로 출근했다.

점심장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오사카 다이쇼쿠 내 시장내 있었던 식당이다.

커다란 창문 넘어 파친코가게가 보인다.

오늘도 어김없이 긴 줄이다.

연령대도 다양하지만 특히 젊은이들이 눈에 띈다.

그 줄을 보면서 아직 21살 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저게 일본의 미래일 수도 있겠다. 한창 일할 시간에 일터에 안가고 파친고가게라니...'

불안했던 일본 경제에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후리타(일본에서 정규직 이외의 취업 형태 (아르바이트나 파트 타이머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를 하던 시기였다.

매일같이 매장 문을 열기 한 시간 전부터 지어지는 줄을 보며, 어느순간 머리속에 스치는 생각이었다.

마치 독립투사라도 된듯, '나는 꼭 열심히 공부해서 저렇게 살지 않으리. 이 나라에서 배운 것으로 꼭 나라를 위해 이바지하겠다.'는 생각까지...

테이블을 닦는 손동작은 더 힘차쳤다. 일은 고단했지만 파친코 가게의 줄을 보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열심히 사니 미래가 밝을 것이라며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점심장사 준비를 빠르게 마쳐야 오후 1시에 시작하는 어학원수업에 늦지 않고 갈 수 있었다.  



부모님의 도움은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 밑으로도 대학을 가야하는 동생이 둘이나 더 있었다. 그런 상황에 높은 엔화의 학비까지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온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고 어떻게든 내힘으로 공부하고 간다.'

정말 억척스럽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오고 싶어서 온 일본에서 실패하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학원 공부에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아르바이트에 매일 녹초가 되었지만 열심히 살아본 기억이 지금의 삶도 부지런을 떨수 있게 해준다.  



어렵게 일본으로 왔다.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가고 싶다는 열망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타국으로 간다는 것은 돈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모르던 철부지 대학생은 무모함 덕에 일본에 갈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행기삯과 여행자 보험료, 그리고 일주일이나 겨우 버틸만한 경비를 들고 오사카로 향했다.

어학원을 등록할 비용이 없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아 1년동안 정식으로 일을 하며 일본에 체류할 자격을 가지고 떠났다.

다행히 거처는 정해져 있었다. 아버지 친구의 누님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이모라고 부르던 '명자이모', 일본식 이름은 '아키코'

이모는 오사카 시장 내에서 한국반찬가게를 한다고 했다.

두려움 반, 기대와 설렘 반으로 시작된 오사카에서의 생활, 재일교 2,3 세대와 결혼으로 일본에 온 여자들, 그들 속에서 영원한 이방인이었던 그네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시간이었다.



파친코를 읽는 내내 오사카에서 만난 사람들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이 살아나 꼭 기록으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사카의 한국인들을 기억하며 하나씩 정리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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