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변화시키는 순간은 언제나 그렇듯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2월 3일 처음 만난 나의 상사에게 런던 본사로 이주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우연히 입사한 회사는 영어로 모든 업무가 가능한 식음료 경력자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영어 실력과 경력면에서 가능성을 높게 사주셨다. 그럼에도 나의 영어는 리스닝과 문법에 특화된 전형적인 한국인의 표상이었다. 그 당시는 Chat GPT가 유명해지기 전이라 DeepL과 Grammarly 등을 끌어가며 영문 이메일 작업을 했었다. 발표를 해야 하는 날이면, 전날 새벽까지 끙끙 앓다가 새벽에 꾸역꾸역 대본을 쓰고 잠들었다.
입사 후 한 달 만에 나를 채용했던 상사가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직무 전환을 하며 입사한 3년 차 주니어였기에 상사의 부재는 절망적이었다. 여러 선배들을 만나며 나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우선 회사의 대처를 기다려보라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상황에 대한 적절한 호소를 어필하도록 했다.
8개월을 상사가 없이 나와 먼저 입사한 팀원 언니와 함께 고군분투하게 되었다. 상사가 없는 상황을 말하자면 장점과 단점이 융화하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좋거나 싫었다.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었겠지만 우선은 기다렸다.
코로나가 끝나며 일본과 대만에 출장을 한 번, 두 번 다녀오기도 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회사에 새로운 CMO님이 한국에 방문을 한다고 했다. 내향적이고 싹싹한 성격이 되지 않아 과연 어떤 모습으로 대해야 할까 고민도 잠깐, 어느덧 그녀가 한국에 방문을 했다. 그녀가 떠나기 전 개별 면담에서 갑작스럽게 런던 본사로 이주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런던? 똑 부러지게 바로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지만, 나의 대답에는 가족과 남자친구가 모두 있었다. 하지만 쿵쾅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추후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열린 결말로 그녀를 배웅했다. 개별 면담에서 나에게 리더로서 조언을 해주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공허했던 업무 환경에서 순식간에 날아온 새로운 세상으로의 초대장.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큰 전환의 순간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