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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May 15. 2019

내가 정리하지 않은 건 내것이 아니다

자현 스님 "스님의 공부법"을 읽고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스님께서 출간한 책들이 추천리스트에 많이 올라와 있었다. 그동안  혜민스님, 정목스님, 원빈스님,  선우 스님 등 여러분의 말씀을 들으며 알게 된 건 스님들 대부분 엄청난 공부를 하고 많은 책을 읽어 혜안을 얻게 된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박사학위 없는 분들이 없고 종교와 관련된 역사, 건축 등 다양한 방면에 깊은 통찰을 가지고 계시니 특별한 공부법이 있을 것이라 속세의 사람들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을 쓰신 월정사 자스님은 머리 좋은 사람들의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 평범한 머리로 이를 극복하는 효율적인 방법들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쓰셨다한다. 스스로 기억력이라는 게 없다고 말면서 노력하면 된다는 허상을 버리고 안 되는 건 안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되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허물고 생각에 자유를 부여하라고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공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나에게 있어서 이것은 유희이며   즐거움일 뿐이다. 이와 같은 자세가 중요하다.  수단으로써의 공부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평생 공부를 목적으로 한다면, 유희의 자세야말로 반드시 확립해야 하는 핵심이라고 하겠다.


자신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쓰인 허상을 벗어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주관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목소리를 자기가 들을 때 타인이 듣는 것과는 다르게 들리는 것처럼, 주관적인 착각과 판단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최대한 벗겨내는 솔직함이라는 작업이 필요하다.


바둑에는 옆에서 구경을 하게 되면 자신의 실력보다 1급이 더 높아진다는 말이 있다. 내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전체 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을 하다가 손해를 보는 사람들 중에는 작게 할 때는 이익을 내다가, 점점 자신감이 생기자 크게 해서 망하는 경우가 있다. 이익과 욕심이 눈을 가려 현실 판단이 흐려진 결과이다. 즉 객관화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이 소유한 능력의 효율성이 증대한다는 말이다


스님의 말씀대로 유희의 자세로 공부를 즐기기 위해 나를 좀 더 객관화시켜 바라보면 나 또한 공부를 즐기며 한적은 없다. 어떻게든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 점수를 높이기 위해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했다. 물론 중간 이상은 했지만 뛰어난 머리도 아니고 월등한 공부머리를 가지고 태어나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감성적인 면에서 공감력이나 이해력은 분명 나의 큰 장점이다. 반면 지구력 있게 오랜 시간 버텨내는 끈기가 약하다 보니 쉬 지치고 지루해하며 새로운 걸 찾. 그러다 보니 한 우물을 깊이 파서 박사 소리는 절대 못 들을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남은 인생 동안 즐기며 할 나만의 공부를 찾을 것인가?

  

오늘날은 스스로가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면, 노년은 너무나도 길고 애달프다. 『법구경法句經』의 명언처럼, “잠 못 이루는 이에게 밤은 길고, 지친 이에게 길은 더욱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이 평생 공부가 필요한 이유이며, 자신만의 공부법을 체득해야만 하는 당위성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핵가족화가 정착된 상황에서 갑자기 수명이 길어지자, 노후자금 문제가 최대의 화두로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지나면 ‘노후 삶의 질’이 문제의 핵심으로 전환될 것이다. 즉 단순히 먹고사는 것을 넘어선 보람된 삶과 행복한 인생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가장 힘을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스스로를 위한 공부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고 나이를  먹어서도 유지할 수 있는 공부법이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중국의 대표적인 문인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의 『생활의 발견』을 보면, 나이   마흔이 되기 전에 세 가지 취미를 만들라는 것이 있다. 그렇지 못하면 노년에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와 같이 노년이 긴 시대에   있어서, 이처럼 절실하고 좋은 말도 없는 것 같다.


스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100세 시대 아직 인생의 반도 못 살았으니 남은 인생 동안 삶의 질을 결정할 ' 스스로를  위한 공부'에 대해 생각해봤다.  다행히 나는 두 개는 찾은 것 같다. 첫째는 책 읽기와 독서기록 습관 들이기이고 둘째는 꾸준히 글을 쓰며 자아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매일 하루에 한 권을 읽어도 죽을 때까지 못 읽는 책이 더 많을 테니 이 얼마나 무궁무진한 취미인가. 책을 덮고 TV를 켜고 리모컨을 돌리며 시간을 보낸다면 일주일도 고역이다. 꾸준히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일 년여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점점 책에 집중도 잘되고 잡념도 없어지는 효과를 본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말았을 나의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감상문을 적다 보니 비로소 책의 일부분이라도 내 것이 되는 느낌이다.


불교공부를 하는 사람 중에 자료를 달라고 하는 분을 가끔 만난다. 나는  자료가 무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사고가 학계에 만연해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자료는  모두에게 공개되고, 그것을 취합하는 관점이 무기가 되는 세상으로 신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인터넷과 같은 열린 환경이 가열차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필요하다는 사람에게는 관련 자료를 몇 테라씩 제공해 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렇게 받아간 사람 중에서, 내   자료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이 자료들은 철저하게 내가 만든 구조와 범주에 의해서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줄 때, ‘반드시 모든 폴더를 열어보고 자신의 방식대로 새롭게 정리해야 한다’고 고지해준다. 그러나 자료의 양이 적으면 모르지만 테라   단위가 되면 사실 보통일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결국 보관만 하고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가지고는 있지만 사용할 수는 없는,   ‘방 안에서 잃어버린 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정말 맞는 말씀이시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자료를 공유하지 않고 혼자만 몰래 보는 사람이 조직에서 성공하지 못하듯이 남의 자료를 취합하는데만 바쁜 사람도 오래가지 못한다. 내가 정리하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글도, 논문도, 디자인도, 기획서도 다 내가 정리하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었다. 물론 참고 삼아 나의 정리 방향을 다잡아 갈 수는 있지만 말이다. 책을 읽기만 하고 책꽂이에 꽂아만 두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책을 방 안에서 잃어버렸는가? 살아오면서 무슨 책을 읽었는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몇 권이나 기억하는가? 내경우는 가끔 브런치에 기록을 해둔 나의 글을 읽으면서 " 아하 그랬지.. 이제 기억나네"  정도다. 물론 책을 모두 기억하기 위해 읽는 것도 아니고 잘난 척을 하기 위해 읽는 것도 아니지만 기록을 함으로써 비로소 내 것이 되는 체험을 꼭 해보길 바란다. 지금도 게임에 몰두해 있는 나의 아이들에게 이런 말은 물론 잔소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엄마의 이 글을 읽는다면 꼭 실행해 보길 바란다 ^^


 스님이 제안하는 많은 공부법을 여기에 옮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또한 스님의 공부법일 뿐이라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나만의 공부법을 찾아야 내 것이 되지 않을까? 박사논문을 쓰기 위해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여생을 즐기기 위해.. 목적에 따라 공부법도 달라질 것이리라. 각자의 목적과 필요에 맞게 본인의 능력에 맞는 공부법을 찾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중생들의 공부를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글을 써주신 스님께는 죄송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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