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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May 09. 2019

단 한 번의 인생, 단 한 번의 죽음

고바야시 구니오 "힘 있게 살고 후회 없이 떠난다"를 읽고

‘죽음을 직시하는 힘’을 지니면 비로소 단 한 번의 ‘인생을 살아가는 힘’도 빛난다


작가 고바야시 구니오는 간질성 폐렴이라는 난치병으로 여생이 2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고 어떻게 죽음을 직시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것인가? 그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한 끝에 '죽기 전에 정리하는 마음의 참고서'로 자신의 글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책을 남다. 2017년에 출간된 책이니 정말 2년이 지난 지금 죽음을 았을지 솔직히 궁금했다. 하지만 네이버 프로필에 나와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생존해 계시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죽음의 선고를 받은 처음 열흘간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놀랍게도 열하루가 지나자 파문이 진정됐다고 그는 말한다.


죽음의 선고가 내 마음의 수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켜 기분이 단번에 가라앉았지만, 인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진 열하루가 지나자 파문은 점점 진정됐다. 잠재의식 속에서 죽음을 각오하기 위한 최적의 해결책을 필사적으로 선택한 덕분이었다. 죽을 각오로 임하면 대개의 일은 열흘 정도면 결말이 나는 걸까. 내 마음의 복원력에 감탄했고, 인생의 가치관을 단숨에 바꿔버린 나 자신에게 놀랐다


회복탄력성이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그 와중에 글을 쓰고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고 타인을 위한 참고서를 남길 생각을 했겠지 말이다.


이제까지는 시간이 충분했고 근거 없는 자신감에 넘쳐 뭐든 공격적으로, 반드시 할 수 있다는 기세로 임해왔다. 쓸데없는 일도 했지만 건강했고, 헛수고 역시 다음을 위한 에너지가 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다. 시간도 체력도 정신력도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더 많이 주판알을 굴리며 효율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정확한 도안을 바탕으로 가치를 부여하면서 일을 갈무리하고 싶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늘 자신감에 넘쳐 공격적이었고 실패조차 언젠가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 믿으며 살았다. 하지만 작가처럼 제한된 시간이 남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는 중생으로서 하루를 살지 십 년을 더 살지 50년을 더 살지 모른다면 어떻게 정확한 도안을 그릴 수 있을까?


누구나 언젠가는 죽지만, 죽을 시기를 알고 나면 남은 시간들이 촘촘해져요. 그러니 지금이 오히려 좋은 인생일 수도 있어요.”


죽을 시기를 안다는 건 암이나 어떤 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을 때나 가능하니 그걸 알 수 없는 보통의 건강한 인간들은 헐렁한 시간을 낭비하다 덜컥 죽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건강하던 애들 아빠가 상세불명의 심장사로 하늘나라로 떠난지 3년이 지났다.  과연 남은 시간을 알았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까? 난 왠지 그가 죽기 전에 이미 자신이 죽을지 알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남은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되는 사람처럼 쫓기며 여행을 하고 차를 사고 레이싱을 하고 활을 쏘고 스킨 스쿠버를 배우러 다녔다 마치 죽기 전에 못해본 건 다 해봐야 하는 사람처럼...


 1918년 7월 7일생인 아버지는 1995년 7월 7일 77세가 되셨고, 평소 주사위 두 개를 던져 같은 숫자가 나오면 매우 기뻐하셨다. 떠나신 날은 79세가 되던 1997년 9월 9일. 8월의 어느 날 병원에서 아버지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이제 한계인가…….’ 싶었는데, 어느덧 9월을 맞이하셨다. 9월이 되자 ‘그럼 9일까지는 분명 힘내실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버지는 정말로 9월 9일에 바로 숨을 거두셨다. 마지막까지 숫자 맞추기를 고집한 멋진 생애였다.


작가의 아버지처럼 숫자 맞추기를 고집한 남자가 또 있었다. 그는 음력 1월 18일 생이었고 나는 음력 11월 8일 생 우리는 양력 11월 18일에 만났고 그는 양력 1월 18일에 죽었다.  음양의 118 숫자 맞추기를 절묘하게 맞춘 인간.. 그럼 나도 양력 11월 8일에 죽으려나?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죽음을 직면해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을까? 사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나의 행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건 좀 서글펐다.

 

저세상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얻은 건 전부 두고 가야 한다.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 것은 자신이 모아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준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남는 것’이다. 참으로 시원하고 개운한 작업이었다.  물건을 남에게 줄 때마다, 쓰레기를 내놓을 때마다 인생에 대한 미련도 버릴 수 있었다


작가의 말데로 어차피 다 두고 가야 할 유품을 너무 많이 남겨두고 가는 바람에 나도 정리하는데 일 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내 주변의 물건도 하나둘 정리를 했다. 그러니 정말 마음이 가벼워졌다. 온갖 물건을 쌓아 놓고 살아온 세월이 쓰레기로 정리돼는걸 예전엔 몰랐다. 그걸 깨닫고 나니 물건에 대한 욕심도 애착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욕심 없이 사니 이렇게 편한걸 말이다.


영정 사진은 고인의 인품이 드러나는 최고의 한 장이어야 한다.  나 역시 나 없는 최후의 고별인사 때  최고의 표정으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싶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아이들에게 나는 무조건 오래 살아야 하는 불사조 같은 존재가 되었다. 백세 인생의 반도 못 산 내가 죽음을 걱정하게 된 건 아이들을 잘 키워 행복하게 사는 걸 지켜봐 줘야 할 의무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무조건 건강하게 씩씩하게 잘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날이 온다면 씩씩하고 밝게 살아온 나의 인품이 드러나는 영정사진을 걸고 슬픈 장례식보다는 즐거운 음악과 함께 행복한 영결식이었음 좋겠다. 언젠가 영국 영화 '해피 홀리데이' 원제 " What we did on Holiday"에서 본 것처럼 즐겁고 행복한 파티 같은 장례식이라면 좋겠다. 죽음을 슬픔이 아닌 행복한 인생 여정의 마무리로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길 바라며  영정사진을 골라는 건 어떨까?



     

죽음을 즐겁게 받아들인 영화 '해피홀리데이'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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