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구니오 "힘 있게 살고 후회 없이 떠난다"를 읽고
‘죽음을 직시하는 힘’을 지니면 비로소 단 한 번의 ‘인생을 살아가는 힘’도 빛난다
죽음의 선고가 내 마음의 수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켜 기분이 단번에 가라앉았지만, 인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진 열하루가 지나자 파문은 점점 진정됐다. 잠재의식 속에서 죽음을 각오하기 위한 최적의 해결책을 필사적으로 선택한 덕분이었다. 죽을 각오로 임하면 대개의 일은 열흘 정도면 결말이 나는 걸까. 내 마음의 복원력에 감탄했고, 인생의 가치관을 단숨에 바꿔버린 나 자신에게 놀랐다
이제까지는 시간이 충분했고 근거 없는 자신감에 넘쳐 뭐든 공격적으로, 반드시 할 수 있다는 기세로 임해왔다. 쓸데없는 일도 했지만 건강했고, 헛수고 역시 다음을 위한 에너지가 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다. 시간도 체력도 정신력도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더 많이 주판알을 굴리며 효율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정확한 도안을 바탕으로 가치를 부여하면서 일을 갈무리하고 싶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지만, 죽을 시기를 알고 나면 남은 시간들이 촘촘해져요. 그러니 지금이 오히려 좋은 인생일 수도 있어요.”
1918년 7월 7일생인 아버지는 1995년 7월 7일 77세가 되셨고, 평소 주사위 두 개를 던져 같은 숫자가 나오면 매우 기뻐하셨다. 떠나신 날은 79세가 되던 1997년 9월 9일. 8월의 어느 날 병원에서 아버지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이제 한계인가…….’ 싶었는데, 어느덧 9월을 맞이하셨다. 9월이 되자 ‘그럼 9일까지는 분명 힘내실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버지는 정말로 9월 9일에 바로 숨을 거두셨다. 마지막까지 숫자 맞추기를 고집한 멋진 생애였다.
저세상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얻은 건 전부 두고 가야 한다.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 것은 자신이 모아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준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남는 것’이다. 참으로 시원하고 개운한 작업이었다. 물건을 남에게 줄 때마다, 쓰레기를 내놓을 때마다 인생에 대한 미련도 버릴 수 있었다
영정 사진은 고인의 인품이 드러나는 최고의 한 장이어야 한다. 나 역시 나 없는 최후의 고별인사 때 최고의 표정으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