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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May 03. 2019

완전 꼰대 공감

민이언 "순수 꼰대 비판"을 읽고


작가에 대한 소개가 나와있지 않지만 글 중 비친 그의 말에 따르면 약 40대 반의 남자 고등학교 한문 선생님으로 추측된다. 고입 재수 시절 터보, ReF의 음악을 들었다니 90학번이 아닐까?  80년대 후반? 나와 비슷한 동년배라서 인지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왠지 모르게 꼰대를 비판하는 그도 여러 유형의 꼰대 중 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 대목이 좀 있긴 했다. 하지만 순수하게 작가의 관점에서 충분히 더한 꼰대들을 비판할 자유는 있다고 본다. 특히 그가 말하는 '교장선생님'은 이 세상 어느 누구에 뒤지지 않는 킹 어브 꼰대 이리라...


나름 소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교장들은, 가끔씩 회식 자리에서 불만사항을 기탄없이 그리고 가감 없이 말해 보라고들 한다. 물론 그 ‘기탄없이’를 곧이곧대로 듣는 것도 아니지만, 또 이런 경우에 교사들은 대개 나름의 가감을 거쳐할 말을 다 하는 편이다. 말하라고 했으면 삐지지나 말던가. 회식 분위기 열라 싸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랑그’를 겉도는 ‘빠롤’의 향연이다.  교장은 관리자로서 그럴 수밖에 없는 변명을 잇대지만, 실상 ‘말하란다고 진짜 말하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개념 없는 캐릭터들은, 속으로 ‘저것들 또 저래, 어차피 저럴 거면서’라며, 그냥 그날의 술과 안주에 충실하고자 한다. 꼰대적 성향이 다분한 상사들은 정말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소통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저 자신의 똘레랑스에 전념할 뿐이다. 사회생활하면서 내 나름대로 터득한 꼰대에 대처하는 자세는, 그냥 흘려듣는 것이었다


이 분위기 어쩔?? 어디선가 많이 본 분위기 아닌가? 사실 뭐 학교뿐 아니라 직장 내 회식 자리든 계모임, 하다못해 동호회에 가도 이런 분위기 많지 않나?? 기탄없이 말하라 해서 말하면 " 그렇다고 진짜 말하냐?" 하는 썰렁한 분위기... 안 봐도 선하다. 그 와중에 아래 인용한 작가의 용감한 행동은 내게 폭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결재를 맡으러 교장실에 들어간 어느 날, 오늘도 결재해 줄 생각은 없으신가 보다. 당신이 생각하시는 ‘문장론’에 대해서 또 장황하게 떠들어 대신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유난히도 지루하게 느껴졌나 보다. 나는 어려서부터 침으로 방울을 만들어 날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교직에서 일하면서는 내 입에서 그 버릇이 튀어나온 적은 없었다. 딱 한 번 학생들이 보여 달라고 해서 시연을 해보인 경우를 빼고는…. 그런데 그날 내가 교장 선생님의 문장론 앞에서 침으로 방울을 날리고 있었다. 침방울이 교장 선생님의 명패에서 상큼하게 터지는 순간을 목도하고서야, 도대체 내가 뭔 짓을 한 건가 싶어서 나도 깜짝 놀랐다. 다행히 교장 선생님은 ‘오해의 소지’들을 체크하시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느냐 그 광경을 보지 못했지만, 심장이 어찌나 쫄깃해지던지….


학창 시절 제일 싫었던 기억이 교장님 훈화 말씀인 내게 만약 학교 선생이 되어 교장 선생님과 독대를 하라 했으면 어땠을까?  문장론을 들으며 침방울을 날리는 작가의 마음이 백번 이해가 된다. 얼마나 심장이 쫄깃했을지 상상만 해도 재밌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중년 여교사의 수다를 향한 그의 발언을 들어보면 그도 흘려듣기 달인은 아닌 듯싶다.


중년의 여성 네 명이 한 테이블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의 주제는 자녀들의 교육, 어디에 위치한 어느 학원이 잘 가르친다더라이다. 어머니들의 과도한 교육열에 늘 태클을 거는 남편들을 희화하는 레퍼토리가 이어진다. 그녀들이 주장하는 자녀교육 제1원칙, ‘아빠의 무관심이 자녀의 장래를 보장한다’를 서로 공감하며 깔깔대면서 밥을 처자시고들 계셨다.  


흠.. 대한민국 아줌마를 적으로 만들만한 꼰대적 발언 아닌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무식쟁이로 몰아치고 생각 없는 몰상식자로 처단해버리는 오만함이 꼰대 아닌가요? 물론 나도 아이들의 학원교육을 반대하고 집에서 애들에게 자유를 주려는 사람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다른 엄마들의 대화를 들으면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 '깔깔대고 밥을 처자신다'는 발언은 하지 않는다. 입장을 바꿔 자녀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는 어머니 네 분이 "학교 선생님들은 애들 보고 공부는 학원 가서 하라고 한다면서요" 하고 편엽 한 발언을 한다면 뭐라 할까? ' 그런 선생은 당연 소수일 뿐이지 모두 그런 건 아닙니다' 뭐 이런 말을 하지 않겠는가? 순수 꼰대 비판의 화살은 상대적인 것이지 일방은 아닌 것 같다. 본인의 발언 또한 순수 꼰대스러운데?


얼마 전 점심시간에 점심을 함께 먹던  팀장님 하나가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다가 '당신은 선배인가? 꼰대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꼰대더라고요"라는 말에 한바탕 웃은 기억이 난다. 물론 그 팀장님이 원리 원칙을 중시하는 관림 팀장님이니 당연 꼰대스러운 게 정상(?)이지만  본인이 자신을 파악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말이다. 사실 나 또한 꼰대다^^. 고집이 강하고 주관이 센 사람 치고 꼰대 소리 안 들어본 사람 있을까?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태도가 아닐까?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나와는 다르구나 그 사람 입장에서 그럴 수 있겠구나 수용하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상 꼰대는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연령에 깃든 예지를 갖추지 못한다면, 연령에 깃들어 있는 재앙이 매사에 발생한다. 볼테르의 어록이다. 시간이 모든 사람을 어른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염치없고, 무례하고, 치졸하게 늙어 가는 인생들도 부지기수다.


작가가 인용한 볼테르의 말처럼 시간이 모든 사람을 어른으로 만드는 건 아니다. 염치없고 무례하고 치졸한 늙은이가 되지 않기 위여 오늘도 나잇값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적어도 꼰대보다는 어른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나 또한 꼰대보다는 어른다운 어른으로 이나 직장 후배와 마음을 열고 대화하려 노력 중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순수 꼰대 비판'보다는 ' 꼰대 공감'할 확률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염치없고 무례하고 치졸하게 늙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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