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읽고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의 핵심 내용이다. 공간은 그저 비어 있고, 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다. 공간은 매 순간 인간의 상호작용에 개입하고, 의식을 변화시킨다.
은은하게 조명을 밝히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도 쭉 늘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이 있어야 ‘자기 이야기’가 생긴다.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자존감도 생기고, 봐줄 만한 매력도 생기는 거다. 한 인간의 품격은 자기 공간이 있어야 유지된다. 아, 자기 전에 그 공간에서 하루를 성찰하며 차분히 기도도 드려야 한다. 자다가 아예 영원히 잠들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위에 이미 여럿 그렇게 갔다.
'공간 충동’입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 들으려면 ‘내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정말 하기 싫은 일, 그러니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일(미치도록 싫은 일입니다)’, ‘저녁마다 TV 채널을 돌리며 등장인물 욕하며 늙어가는 것(아, 이건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을 피하려면 ‘내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 허접한 외로움을 담보로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바로 ‘내 공간’이었습니다. ‘무소유’를 주장하고 실천한 법정 스님은 자신이 평생 버리지 못한 욕심이 하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깨끗한 빈방’에 대한 욕심이랍니다. ‘공간 욕심’, 즉 ‘공간 충동’만큼은 법정 스님도 어쩌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친구들이 여수 내 화실을 찾아왔다. 참 오랜만에 만난다. 잘 나갈 때는 다들 기사가 모는 ‘법인 차량’을 타고 와 폼 잡았다. 이번에는 친구 다섯 명이 차 한 대에 몰려 타고 우르르 내려왔다. 올해 다들 ‘잘렸다’. 남자가 망가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다.
은퇴하면 바로 죽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은퇴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기준이 바로 그 시절의 가치에 맞춰져 있다. 삼십여 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우리 모두가 지금 아무 생각 없다. 바로 앞선 세대의 ‘노욕老慾’을 보면서, 도대체 왜 저럴까 싶었던 것이 ‘잘리고 보니’ 다 이해된다고도 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첨예한 갈등 배후에는 죄다 ‘느닷없는 생명 연장’이 숨겨져 있다. 단순한 이념적 갈등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평균수명 50세도 채 안 되던 지난 세기의 낡은 사회 설명 모델로 한국 사회를 설명할 수는 없다(이건 정말 중요한 포인트다!).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이 엄청난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롤 모델’도 전혀 없다. 각자 ‘용감하게’ 찾아야 한다. ‘손’으로 하는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무직에서 일했던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배우는 것이 좋다. 두 번째 인생에는 노동의 결과를 눈으로 직접 판단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을 해야 심리적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교수, 기자, 선생과 같이 말과 글로 먹고산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말년의 성품이 무난해지며 ‘꼰대’를 면할 수 있다.
‘미역 창고’에서는 내 자신에게 더욱 충실하고 싶습니다. 심리학자 비고츠키의 이론 중에 ‘내적 언어innere Sprach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생각’이란 ‘내적 언어’라는 뜻입니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기호sign’와 ‘상징symbol’을 매개로 내면화된 결과가 ‘생각’, 즉 ‘내적 언어’라는 겁니다. 책은 이 같은 ‘내적 대화’를 가능케 하는 가장 훌륭한 매개체입니다. 내 공간충동의 최종 목적지는 ‘자신과의 내적 대화’, 즉 ‘생각’입니다. 물론 담보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외로움’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외로움을 담보로 해야 ‘책을 매개로 한 내적 대화’가 진실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을 더 느낍니다. 다들 그 외로움을 피하려고 ‘관계’로 도피하는 걸 봅니다. 그러나 세상에 어리석은 일이 ‘외로움을 피해 관계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고통은 ‘불필요한 관계’에서 나옵니다. 차라리 ‘외로움’을 견디며 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옳습니다. 진짜 외로워야 내 스스로에게 충실해지고, 내 자신에대해 진실해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