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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Jun 06. 2019

방대하고 진귀한 인생 여행

앤드류 솔로몬 "경험 수집가의 여행"을 읽고

 

'경험 수집가의 여행' 제목만 보고 여행 에세이 정도의 가벼운 글이 아닐까 생각하면 정말 큰 착각이다. 7 대륙 25년의 기록이란 소타이틀을 보고 짐작했어야 했다 얼마나 길고 긴 인생 여정이 녹아 있을지. 게다가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라 기자 및 운동가인 작가의 역사 문화체험 기록에 가깝다. 동성애자로 남편 존을 너무나 사랑하는 작가 솔로몬이 운동가의 관점에서 쓴 글도 있고 우울증을 겪은 이로서 책까지 펴낸 의 경험이 담겨 있기도 하다. 기자로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진정한 의미의 경험 수집가로서 펴낸 인생 스토리이다. 덕분에 일주일 꼬박 읽으면서도 중간중간 TMI (Too much Information)을 담은 디테일한 부분은 건너 띄어가며 읽어야 했다. 번역가의 말을 빌면


1988년부터 2015년까지 거의 30년에 걸쳐 작성된 이 글들은 비록 한 사람의 여행 기록이기는 하나 그 속에는 지난 30년간의 세계 변화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워낙 장문의 책이지만 길고 긴 여정 끝에 그가 가족에게  감사를 전하는 부분이 제일 가슴에 와 닿아 아래 옮겨본다.


내게 모험을 장려했던 어머니에게 감사한다. 돌아가신 지 벌써 25년이지만, 어머니는 이 책의 앞쪽에 묶인 글들을 읽고 의견을 주셨다. 어머니는 내 글이 늘 명료하기를 바랐고, 늘 친절하기를 바랐다. 초기에 썼던 그 글들을 다시 읽어 보니, 어머니의 영향은 내가 이후에 쓴 모든 글들에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당신이라면 결코 가지 않을 테고 나도 가지 말았으면 싶은 장소로 노상 떠나는 데 대해 아주 천천히 마음을 바꾸셨다. 아버지는 지금도 내 첫 독자이자 가장 정성스러운 독자이고, 내가 태양에 너무 가깝게 날 때면 늘 두 팔을 활짝 펼치고 나를 받아 줄 준비를 하고 계신다.... 마지막으로 남편 존 하비치 솔로몬에게 고맙다. 존은 그동안 내 외면의 여행뿐 아니라 내면의 여행에도 동행해 주었다. 내가 세상을 함께 보고 싶은 사람은 존 뿐이고, 세상 속에서 함께 살고 싶은 사람도 존뿐이다. 존은 나의 북극이자 남극, 나의 적도, 나의 북회귀선이자 남회귀선, 나의 일곱 대륙이자 일곱 바다다.


돌아가신 어머니, 여행을 말리지 않고 믿고 기다려준 아버지 그리고 전부인 남편 존에 대한 감사가 정말 감동적이다. 사실 처음에 작가 프로필을 보고 분명히 남성임에도 남편 존 얘기를 꺼낼 때 이건 뭔 소린가 하고 갸우뚱했다. 그만큼 나 또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 몇 번씩 가족을 이루고 전부인의 아이들을 키우며 사랑하며 살고 있는 솔로몬의 상황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마하마 대통령이 된 존 드라마니와의 인연이 와전된 기사가 실려 어이없는 추문에 휘말린 경험을 말할 때 나 또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존 드라마니 마하마 대통령, 게이 로비스트 앤드루 솔로몬과 한 침대에 드는 사이로 밝혀져.〉 하필이면 저 유감스러운 관용구를 사용한 기사 제목은 말했다. 또 다른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앤드루 솔로몬은 동성애자 사회의 몇몇 부자들을 모집하여 마하마 대통령의 선거 운동 자금을 댔다고 한다. 마하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동성애자 문제를 밀어붙여 줄 것으로 알고 그런 것이다.〉 기사는 또 내가 마하마의 책을 구입하는 데 2만 달러를 썼다고 보도했다.... 나는 외국 선거에 참견할 능력도 의향도 없고, 마하마가 서명을 해서 내게 증정한 책에 땡전 한 푼 지불하지 않았다. 내가 동성애자 인권 문제에서 마하마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방법은 아빠만 둘 있는 유쾌한 가정에 그를 초대하여 환대한 것뿐이었다. 국가적 추문에 연루된다는 것, 누군가를 친근하게 돕고자 했던 일이 오히려 그에게 부담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대단히 속상한 일이었다.


그가 방문한 7 대륙, 28곳의 현장 중 개인적으로 가보고 싶은 곳은 몽골이었고 가장 가슴 아픈 현장은 르완다, 가장 기억에 남은 곳은 그린란드였다. 먼저 몽골을 가보고 싶었던 건 아래 내용 때문이다.


몽골의 거의 모든 땅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한 번도 누구의 소유인 적 없었다. 누구나 원하는 곳으로 어디든 차를 몰아도 되고 원하는 곳에 어디든 텐트를 쳐도 된다. 고비 사막에서 만난 한 목동은 내게 말했다. 「게르를 옮길 때면,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에 신이 납니다.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디에든 집을 세울 수 있고, 동물들을 어디로든 데려갈 수 있죠. 사람들이 도시를 세운 몇 군데 좁은 장소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목동은 내게 낙타 젖을 탄 차를 따라 주느라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렇게 물었다. 「어때요, 미국도 자유로운 나라인가요?」 애국자로 살아온 내 평생 처음으로,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몽골 인구의 3분의 1이 빈곤선 아래에 있지만, 내가 아메리칸드림을 이야기하자 목동은 물었다. 「아들이 왜 아버지와 다른 삶을 원합니까?」 나는 우리 발치에서 놀고 있는 목동의 어린아이들은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목동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애들을 학교에 보낼 겁니다. 그리고 이 애들이 정치인이나 사업가가 되고 싶어 한다면, 그야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나도 학교에 다녔지만 목동이 되는 길을 선택했죠. 아이들도 나처럼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이보다 더 좋은 삶은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세상 사람들은 흔히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겼다고 말하지만, 몽골을 떠날 즈음 나는 애초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의 대립항인 적이 없었으며 유목 생활이야말로 그 두 체제 모두의 진정한 대립항이라고 믿게 되었다. 유목 생활이야말로 인류가 이제껏 일군 여러 삶의 양식들 중 즐거운 무정부주의에 가장 근접한 양식이라고.... 몽골의 진면목은 멋진 경치마저 뛰어넘는 무언가다. 그것은 바로 몽골에서는 (울란바토르 밖에서라면) 어디서든 여행자가 원하는 것, 즉 순수한 자연과 불변의 문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후 꼭 짚어서 고비 사막이나 후브스굴을 보고 싶다면, 혹은 야크를 보고 싶다면, 그냥 가서 보면 된다. 중국인들은 외국인은 자기네 사회의 복잡성을 결코 꿰뚫어 볼 수 없다고 여기면서 묘한 민족주의적 자긍심을 느끼고, 러시아인들은 서양인은 러시아인 특유의 절망을 결코 이해할 수도 흉내 낼 수도 없다고 믿는다. 반면 몽골인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아주 명확하게 아는 것 같고,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고 싶어 하면 진심으로 기뻐한다. 우리가 몽골에서 느끼는 것은 역사만이 아니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것은 영원이다.


영원을 발견할 수 있는 곳, 유목민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식은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일반적인 부모와 달리 자신의 자식이 분명히 자신처럼 살 거라는 확신을 가진 몽골인의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무한 가능성의 삶이 궁금해서라고 해야겠다.

 

다음으로 솔로몬이 방문한 나라 중 우간다가 가장 가슴 아프게 기억에 남는 건 우간다 대학살의 진실을 처음 자세히 알았기 때문이다. 책이나 뉴스에서 조차 못 들어본 가슴 아픈 우간다 대학살의 끔찍한 현장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으로 군인, 경찰, 민병대가 집단 학살을 하였고  그 와중에 강간당한 여성을 취재한 이야기다.


학살 중 강간당한 여성의 수는 최대 50만 명에 이른다. 살아남은 투치 여성 중 약 절반이 강간당했고, 강간당한 여성은 거의 모두 HIV에 감염되었다. 강간으로 잉태된 아이를 출산한 경우는 최대 5천 건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나쁜 기억의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어느 작가는 그 아이들을 〈죽음의 시간이 남긴 산 유산〉이라고 표현했다. 한 조사에서는 여성 응답자의 90퍼센트가 자기 가족을 죽인 학살자의 아이를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간당해 낳은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의 신에 가까운 일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강간이 여러 트라우마 중 하나일 뿐이라면 더 그렇다. 여자들은 가족을 잃었다. 사회적 지위를 잃었다. 한때 든든하게 느껴졌던 사회 구조를 잃었다. 삶이 안정적이거나 지속적이라는 느낌을 잃었다. HIV로 건강을 잃었다. 내가 그런 여자들과 아이들을 만났던 2004년 봄, 아이들은 아홉 살이었다. 후투족 아버지를 닮은 생김새가 드러날 만큼 충분히 성숙한 나이였다. 나는 여자들이 어떻게 그런 아이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혹은 사랑하지는 않아도 보살피기는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르완다로 갔다


취재에 응한 여성들의 트라우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다. 힘없는 여성들을 죽이는 대신 강간하고 천천히 HIV에 걸려 고통을  강간당한 남자의 아이를 낳고 키우게 하는 상황이라니 정말 끔찍하지 않을 수 없다. 1990년에 일어난 일이니 30년도 안된 동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놀랍다. 죽음의 시간이 남긴 산 유산이 바로 나쁜 기억의 아이들 그리고 엄마라는게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저자 솔로몬이 우울증이 문화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조사하기 위해 방문한 그린란드였다.


우울증이 문화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구성되는지 알아보던 중, 나는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족을 방문했다. 그들에게 우울증이 널리 퍼져 있는 데다가 우울증에 대한 이누이트 문화의 태도가 독특하기 때문이었다. 그린란드 사람의 최대 80퍼센트가 우울증을 앓는다. 우울증이 그토록 빈번히 발생하는 사회는 어떻게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린란드로 가기 전, 나는 그곳의 주된 문제는 계절성 정동 장애 SAD가 아닐까 추측했다. 계절성 정동 장애는 햇빛 부족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일 년에 석 달씩 해가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장소에서는 특히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린란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초가을에 기분이 가라앉았다가 2월이 되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다. 현실은 달랐다. 그린란드에서 자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달은 5월이다. 북부 그린란드로 이주해서 사는 외국인들은 긴 어둠의 시기에 곧잘 우울해하지만, 이누이트들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계절적 빛 변화에 적응하는 법을 익혀 왔다. 많은 사회에서 봄은 자살의 선동자다. 작가 A. 앨버레즈는 이렇게 썼다. 〈자연이 더 풍요롭고 부드럽고 즐거워질수록 내면의 겨울은 더 깊어지는 듯하다. 내면세계와 바깥세상을 갈라놓는 심연이 더 넓어지고 더 끔찍해지는 듯하다.〉 봄이 가져오는 변화가 온대 지방에 비해 두 배는 더 극적인 그린란드에서, 봄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다.


놀랍게도 국민 80%가 우울증을 앓지만 온 가족이 이글루에서 함께 지내며 춥고 어두운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나갈 곳도 없고 "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하면 그저 잠자코 고개를 돌려서 벽이 녹는 걸 바라봤습니다." 라 말하는 그들의 삶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놀랍게도 자살률이 가장 높은 건 봄이 오는 5월이라는 사실이었다. 정말 추운 혹독한  겨울을 버텨내고 자연이 풍요로워질 때 오히려 내면의 겨울이 더 깊어진다는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다. 인간은 다 같은가 보다.  꽃이 만발하고 햇살이 쏟아지는 봄에 오히려 마음 둘 곳이 더 없걸 보면 말이다.


여행을 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경험하는 일은 흔치 않다. 솔로몬이 존과 신혼여행을 가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다 바다에 혼자 표류할 때 적은 글을 읽으면 정말 공감이 간다.


나는 인생에서 누리고 싶었던 것들을 거의 다 이뤘다. 사랑, 아이들, 모험, 의미 있는 경력. 내가 살아온 인생이 감사했다. 이제 그 인생이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더라도. 그러나 내가 실종되면 아버지가 죽도록 고통스러워하실 것 같았다. 그래서 미안했다. 제일 많이 든 걱정은 아이들이 내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느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죄책감이 들었다... 이때쯤 나는 바다에 약 한 시간 반을 떠 있었다. 햇볕에 타서 바삭바삭 익었고, 열이 약간 오르는 것 같았다. 바닷물은 꿀꺽꿀꺽 한없이 마신 것 같았다. 이토록 외롭기는 처음이었다.  문학 작품에서 자주 읽었던 말, 사람은 어떻게 죽든 결국에는 누구나 혼자 죽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을 위해서 하려고 계획했던 일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려고 애썼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것은 내 인생이 아니라 아이들의 인생이었다. 현재에 집중하는 일에는 늘 소질이 없었던 나는 이번에도 계획 불가능한 미래를 계획하는 일에서 위안을 느꼈다.  나는 참 하찮은 존재였다. 인간은 참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정말이지, 한 인간이 사느냐 죽느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만약 바다에서 한 시간 동안 혼자 표류하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나 또한 아이들 걱정이 컸을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해서 해주어야 할 많은 일들을 못해준다는 죄책감, 그냥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회의감이 밀려들었을 것 같다. 사실 인간은 정말로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다. 언제 죽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후회 없이 말할 수 있을까? 내 인생에서 누리고 싶었던 것들을 다 이뤘다고? 내가 살아온 인생에 감사한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 아이들도 더 키워야 하고 사랑도  더해야 하고 자연도 더 즐기고 싶다. 여행은? 꼭 멀리 가야 여행은 아니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더 많이 가보고 싶다. 몽골, 아프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


탱크와 맞서도 무서울 것 없었던 젊은이로 시작했던 그의 여행 인생이 아이들을 두고 인생에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중년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이 숱한 여행이 아니었다면 그가 오늘날처럼 타인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의 열망을 갖춘 훌륭한 작가가 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경험 수집가의 여행, 번역자의 말> 중에서



언젠가 나도 한 20년 후에 책을 하나 출간해보고 싶다. 나의 인생 여행을 돌아보는 책. 앤드류 솔로몬처럼은 말고 그냥 소박하 덤덤하게 적고 싶다. 그는 너무 별나고 특별하다. 나는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다. 꼭 특별해야만 좋은 건 아니다... 그게 내가 책을 읽으며 깨달은 바다. 간접경험을 통한 성찰이말로 독서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앤드류 솔로몬의 28년간의 인생 기록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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