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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Jul 10. 2019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일수록 인맥이 넓지 않다?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고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를 시작으로 보스턴 컨설팅 그룹과 AT 커니를 거쳐 세계 1위 경영 인사 컨설팅 기업 콘 페이리 헤이 그룹의 시니어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야마구치 슈. 그의 저서를 처음 접하지만 철학을 나름 어렵지 않게 우리 삶과 연결해 놓았다. "교양 없는 전문가야 말로 우리의 문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다"라는 말을 빌어 철학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그는 철학을 배워야 하는 네 가지 이점을 이렇게 말한다.


1.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2.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운다.

3. 어젠다를 정한다.

4.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는 그렇다 치고 네 번째는 무슨 말인지 갸우뚱하다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반복해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어리석음을 극복하기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야마구치 슈는 책에서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도구라는 소제로 철학자와 그의 사상을 간략히 설명하고 우리의 삶과 연결시켜 각 주제를 짚어 나간다. 나는 그중 11번째 생각도구가 제일 와 닿아서 이를 소개하려 한다.  



소제목: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일수록 인맥이 넓지 않다

  

당신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있는가? 저자는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5단계설, 즉 1단계 생리적 욕구, 2단계 안전의 욕구, 3단계 소속과 애정의 욕구, 4단계 존중의 욕구,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를 기반으로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 중 최고 우위에 있는 자아실현을 이루었다고 판단한 많은 역사 인물을 비롯해 당시 생존해 있던 아인슈타인과 그 밖의 인물들에 대한 사례 연구를 통해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15가지를 밝혔다.  
1. 소망, 욕망, 불안, 낙관주의, 비관주의에 기인해 예견하지 않는다. 미지의 것이나 애매한 것에 겁먹거나 놀라지 않고 오히려 흥미로워한다.
2. 마치 자연을 자연 그대로 무조건 받아들이듯이 인간성의 약점, 죄책감, 유약함, 사악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  
3. 행동, 사상, 욕구에 자발적이다. 행동의 특징은 단순하고 자연스러우며, 거짓을 꾸미거나 결과를 노리느라 긴장하는 일이 없다.  
4. 철학적, 윤리적인 기본 문제에 관심이 있으며 넓은 준거기준 frame of reference 속에서 살아간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다. 폭넓고 보편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일을 한다.
5. 혼자 있어도 상처 받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고독과 혼자만의 생활을 즐긴다. 이러한 초월성은 일부 사람들에게 냉정함, 애정의 결여, 우정의 부재, 적의로 해석되기도 한다.
6. 비교적 생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에서 독립해 있다. 외부에서 얻을 수 있는 사랑과 안전에 의한 만족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자기 발전과 성장을 위해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 능력을 믿는다.
7.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항상 신선하고 천진하게 인식하고 경외와 기쁨, 경이로움과 황홀감을 느낀다.
8. 신비로운 체험을 갖고 있다. 황홀감과 경이로움과 외경심을 동시에 가져오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 일어났다고 확신한다.
9. 인류에게 화가 나거나 조바심이 나거나 싫증이 날 때도 있지만 그들에게 동정과 애정을 느끼며 도움을 주고자 한다.
10. 마음이 넓고 깊은 대인 관계를 유지한다. 소수의 사람들과 특별히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자아실현적으로 매우 친밀해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1. 가장 심원한 의미에서 민주적이다. 계급이나 교육제도, 정치적 신념, 인종과 피부색 등에 관계없이 자신과 잘 맞는 성격의 사람과는 누구와도 잘 지낸다.
12. 매우 윤리적이고 확실한 도덕 기준을 갖고 있어 올바른 일을 행하고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 수단과 목적을 명확히 구별할 줄 알고 수단보다 목적에 마음이 끌린다.
13. 악의 있는 유머, 우월감에 의한 유머, 권위에 대항하는 유머에는 웃지 않는다. 그들이 유머라고 인정하는 것은 철학적이다.
14. 특수한 창조성, 독창성 등 발명의 재능을 갖고 있다. 그 창조성은 건강한 아이의 천진난만하고 보편적인 창조성과 같은 종류다
15. 자아실현적 인간은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 속에서 잘해 나가지만, 아주 깊은 의미로는 문화에 편승하는 데 저항한다. 사회의 규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규제에 따른다.

지적 하나하나에 깊은 울림이 있어 가히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만하다. 이들 특징을 하나씩 꼽아 가며 고찰하는 것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완성될 텐데, 여기서 특히 살펴보고 싶은 조항은 초월성-프라이버시의 욕구(⑤)와 대인 관계(⑩)다. 특징을 보면, 매슬로가 자아실현적 인간이라고 인정한 사람들은 고립적인 성향을 띠고 있으며 소위 인맥이 넓지 않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어떤가?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면 몇 가지 항목에서 스스로 자아실현을 이루었다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보통 사람은 3단계, 소속과 애정의 욕구 또는 4단계 존중의 욕구에 머무르고 있지 않을까? 물론 2단계 안전의 욕구, 1단계 생리적 욕구조차 해결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를 판단해보면 가끔은 1단계, 생리적 욕구의 어리석은 인간 같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5단계의 자아실현 인간 같기도 하다. 그야말로 극과 극을 오가는 수준이니 평균은 3단계 정도라 해야 하나? 아직 자아실현을 완성한 인간이 아니기에 위에 열거한 15가지 항목이 평범해 보이진 않는다.


그중 저자가 지적한 5번째 항목, 초월성을 살펴보면 나 또한 혼자 있어도 상처 받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고독을 즐기는 인간고 싶기는 하다. 책을 읽을 때, 글을 쓸 때, 혼자 산책할 때는 내가 정말 고독을 즐기는 인간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외로운 마음이 친구를 찾게 하고 대화를 하게 하는 걸 보면 아직 완전한 자아실현은 멀었나 보다. 하지만 10번째 조항, 소수의 사람과 특별한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부분은 나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동안 넓은 인간관계를 거부하고 한 사람을 만나도 깊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게 낫다는 나의 신념에 위로를 주는 항목이다. 가끔은 나의 이런 인간관계가 갈수록 편협해지는 게 아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사실 있었다. 하지만 힘든 시간을 지나다 보면 인간관계가 걸러지면서 자연스레 깊은 인간관계만 남게 된다. 책을 읽으며 인맥이 넓어야 잘 살고 성공한 삶을 산다는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버리고 내방 식데로 살아도 되겠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독고다이 뭐 이런 식의  말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이런 유의 사람을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내가 자기중심적으로 상대방을 바라본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늦게나마 책을 보고 글을 쓰며 조금 내면의 성찰을 하다 보니 과거 나의 젊은 시절 행동들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부끄러움을 깨닫게 되는 나이에 이르러 나를 돌아보고 좀 더 넓은 안목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가. 


나이 먹고 나잇값을 못하는 어른처럼 한심하고 추한 경우가 없다. 오히려 생리적인 욕구에 집착하는 아기처럼 행동하게 되기도 하고 안전한 거처를 찾아 떠돌기도 한다. 자식에게 사랑받고 주변 사람에게 존중받고 싶어 꼰대 짓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부디 사는 날까지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너무 늙기 전에 자아실현을 이루고 일찍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물론 엄청 싫어하겠지만...


부디 죽는 날까지 배우고 익히며 깨어있는 인간이 되었음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가능할까? 인맥이 좁아도 개의치말고 소수의 사람과 깊은 관계를 누리다 자아실현의 욕구를 해결하고 아름답게 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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