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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Mar 31. 2018

소통을 위한 대화 ?

말그릇을 읽고

조개를 해감 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조개를 소금물에 담가서 빛이 들지 않도록 그늘에 두거나 검은 봉지를 씌워 놓으면 조개는 본래 살던 곳처럼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모래와 찌꺼기를 내뱉는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싶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믿음을 주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것을 잊어버린다. 필요 이상의 일들을 하고 경계를 침범한다. 상대방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꼬집어 알려주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치밀하게 조언하고 그것도 안되면 직접 문제를 해결한다. 그것이 결국 조개의 입을 더 꾹 다물게 만든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것들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가장 잘 어울린다. 봄날의 꽃도 그렇다. 꽃이 활짝 필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뿐이다. 물론 꽃이 늦게 피면 걱정하고 만개했을 때 맘껏 기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 열릴지 결정하는 것은 오직 꽃봉오리뿐이다.  
말 그릇이 큰 사람은 이 기다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대화 속에서 실천한다. 바로 경청하는 것이다. 듣는 실력이 있다면 말을 많이 하지 않고도 관계의 거리를 좁히고 갈등을 줄일 수 있다. 태양빛을 내리쬐거나 소나기를 퍼붓지 않아도 스스로 마음의 갑옷을 벗고 대화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게 바로 경청이다.

  

김윤나 작가의 말 그릇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이다. 살면서 말하기보다 듣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스스로 되뇌어 왔건만 정말 내가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냐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그렇지 않다. 특히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얼마나 성급하게 침범하고 아이의 잘못을 꼬집어 주고 치밀하게 조언해 왔던가. 아이의 입을 조개처럼 다물게 만들 수도 있었던 내 과오를 생각하며 나의 말 그릇을 돌이켜 보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말이 주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는데 내가 말로 받은 상처는 평생 가슴에 품고 있으면서 정작 내가 남에게 준 상처는 쉬 잊어버리고 살지 않았나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 속에서 나오는 세 가지 유형 중에 나는 폭포 수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폭포 수형: 기분이 나쁘면 마음에 담아두지 못하고 말을 쏟아내야 속이 후련해지는 스타일 

  

호수형: 웬만해서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스타일 but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마음속에서 차고 넘쳐 터져버릴 수 있음  

  

수도꼭지형: 시원하게 혹은 따뜻하게 물의 온도를 선택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흐르지 않게 잠가두고 필요할 때는 원하는 만큼 조절해서 사용하는 스타일. 

  

그동안 얼마나 폭포수처럼 내 감정을 쏟아내며 살아왔는지 남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가장 가깝고도 멀었던 남편이 내게 준 말 상처를 겪으며 나는 또 얼마나 상처를 주었던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두아들의 마음을 닫아 버리는 발언들을 얼마나 했을까? 나를 낳아주신 엄마에게 얼마나 지독하게 듣기 싫은 말을 쏟아냈던가? 돌이켜보니 정말 끔찍하다. 



정신 분석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사랑에 대해 현대인인 지니고 있는 몇 가지 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어떻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또한 사랑하는 것을 이러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로 가정한다  
우리의 말에도 똑같이 작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를 상대방을 이해하는 차원이 아니라 내가 이해받기를 위한 문제로 생각한다.

  

그랬다. 나는 사랑할 줄 모르고 사랑을 받는 문제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대화 또한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늘 컸다. 엄마가 돼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야 조건 없는 사랑을 처음 해 보았고 이해받기보다 늘 이해해야 하는 숙제를 처음 풀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숙제에 해답을 못 찾고 실수를 반복하고 있지만 이제라도 나의 말 그릇을 점검해보니 큰 그릇은 못됨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말은 담는 그릇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런데 크기에 따라서 말의 수준과 관계의 깊이가 달라진다   
요즘에는 말하기를 주도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르치고 바꾸고 조정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 욕심 때문에 말 안에 사람을 담지 못한다. 지금 당신은 어떤 말을 사용하고 있는가? 통제를 위한 말인가? 소통을 위한 말인가?

  

나는 소통을 위한 대화를 했던가? 통제를 위한 말을 더 많이 했던가? 솔직히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고 밥을 먹여 학교를 보내고 다녀와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했는지 나누는 대화의 80%는 통제의 말이 아니었을까? “일어나라, 밥 먹어라, 학교 가라, 잘 다녀와라, 잘 자라..” 그 외에 20% 정도 소통을 위한 대화를 했던 것 같다. “ 학교는 어땠니? 친구들과 즐거웠니? 점심은 맛있었니? 컨디션이 어떠니? 재미있는 일 없니? 뭐하고 싶니? 뭐 먹고 싶니? ” 이 정도가 일상의 대화니 말이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통제하는 말만 늘어놓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며 소통을 위한 대화를 더 늘려야겠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있다. 당신의 인생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당신의 말 그릇 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기억들을 꺼내어 보길 바란다. 각각의 기억을 햇볕에 말리고 아직 꺼내보기 힘든 기억은 잠시 쉬게 놔두면서 천천히 자신과 만나보자. 그렇게 자신과 마주하고 나면 이제 당신의 말이 달라질 것이다. 말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이고 사람에 대한 이해는 나 자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실 나는 늘 바쁜 인생을 살았다. 마음이 바쁘니 말도 바쁘고 조급했다.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최근 회사 일을 줄이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를 들여다보고 자아성찰을 시작하고 나서야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거리고 응어리가 풀리니 여유가 생기고 그러니 마음도 말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거다. 물론 지금도 바쁜 인생을 살아야 할 때이지만 삶을 돌아보며 나를 돌아볼 시간이 꼭 필요했기에 나의 기억들을 꺼내 글을 쓰는 시간이야 말로 나를 햇빛에 말려 따뜻하게 감싸주는 시간인 것 같다. 덕분에 혼자 있을 때 찾아오던 우울함도 사라지고 내 시간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 같다. 우울함은 자존감을 갉아먹는 존재고 글쓰기는 우울함을 털고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아주 좋은 처방이다. 정신과 의사에게 한 시간 떠드는 것보다 혼자서 종일 글 쓰는 게 훨씬 나를 이해하고 달래주는 처방임을 알게 되었다.  

  

미국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드는 그의 책 ”자존감과 여섯 기둥”에서 자존감과 의사소통, 그중에서도 감정의 상관관계에 대해 조명했다. 그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고 친절하게 의사소통을 할 줄 안다고 말했다. 자신의 생각이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국 글쓰기는 자아성찰을 통한 자존감 회복을 돕고 자존감 회복은 의사소통을 돕는다.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경청하는 여유를 갖게 해준다. 나의 말 그릇을 크게 만들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나를 알아야 하고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터득한 방법이다. 한 번은 꼭 내 말 그릇을 되돌아 보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 리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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