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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Apr 07. 2018

곤란해지지 않는법?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읽고

김신회 작가의 책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발견한 순간 ‘ 아!! 보노보노를 아는 사람이? 그것도 책을?’ 하고 반가움 반 놀라움 반이었다.

십몇년전 큰아이가 네다섯 살 쯤인가 봤던 그 오래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었구나 하는 반가움이 먼저였고 그 애니를 소재로 책을 쓰다니 하는 놀라움이 다음에 따라왔다. 일단 호기심에 무조건 집어 들고 왔다. 도대체 무슨 얘기로 책 한 권을 썼을까 궁금해서 말이다.

읽어보니 역시 달랐다. 나는 왜 만화라면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고 깊이 보려 하지 않았을까? 아니 보려고 한적은 있었지만 그렇게 깊게 관심을 두지 않고 흘려봤던 것 같다.

 

책을 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곤란함에 대해 고민하던 보노보노가 배가 고파지면 곤란하니까 늘 조개를 들고 다니며 미리부터 걱정을 하며 살자 야용이 형과 너무리가 하는 말이다.

 

보노보노, 살아있는 한 곤란하게 돼 있어
살아있는 한 무조건 곤란해
곤란하지 않게 사는 방법 따윈 결코 없어
그리곤 곤란한 일은 결국 끝나게 돼 있어
어때?
이제 좀 안심하고 곤란해질 수 있겠지?
곤란해지는 걸 왜 그렇게 곤란해하는 거야? 사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는 거야?
누군가 사는 게 어렵다는 말을 듣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먹고 놀다 자고, 먹고 놀다 자다가 때가 되면 죽는 수밖에 없어
그게 뭐가 어렵다는 거야. 응?
그럼 난 왜 곤란해하는 걸까?
그건 말이야. 음….  
‘곤란해지고 싶지 않아! 곤란해지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니까 곤란해지는 거야
아 그럼 곤란해지고 싶지 않아! 곤란해지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곤란해지지 않겠네?
그렇지!


생각하지 말라면 할수록 자꾸 생각나고 잊어버리려 할수록 기억에 남은 이유는 생각하지 않겠다는 잊어버리고 말겠다는 노력 자체가 자연스러움과 거리가 멀기 때문 아닐까? 같은 이유로 걱정하는 사람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 곤란해하는 사람에게 곤란해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은 일시적인 안심은 전해줄지 몰라도 진정한 위로는 되지 않는다.

 

정말 공감 가는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잊으려면 더 생각나는 사람, 지우려면 더 생각나는 기억들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는가? 그럴 때마다 억지로 노력하며 힘들어하던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맘껏 슬퍼하고 맘껏 보고 싶어 하고 맘껏 곤란해하면 언젠가는 슬픔도 마르고 언젠가는 보고 싶지 않은 날이 오고 언젠가 곤란한 일은 결국 끝나게 돼 있다는 진리를 말해주는 만화였다니! 작가를 통해 보노보노를 재발견하게 됐다.

 

보노보노: 아빠 봄이 왔네
아빠: 응, 그러네
보노보노: 겨울 다음에는 꼭 봄이 오네
아빠: 응, 세상에는 정해진 게 있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 일이 있어야 하지
보노보노: 그렇다면 그건 누가 지키고 있는 걸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 정해진 세상 속에 살면서 우리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게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걸 지키는 건 자연일까? 신일까? 인간일까? 가끔 궁금해진다.

요즘처럼 봄인 줄 알았더니 3월 하순에 눈이 내리고 여름인지 알았는데 서리가 내리고 가을인 줄 알았는데 홍수가 오고 겨울인 줄 알았는데 꽃이 피는 세상을 살다 보니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일들이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인간이 죽는다는 건 아직 변치 않는 사실이니 그날에 곤란하지 않으려면 오늘 하루 더 행복하게 사는 게 최선일까?


어른은 재미없어
재미 없어지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어른이거든
재미 없어지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일이란 뭘까?
재미없으면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재미없는데 왜 하는 거지?


보노보노나 작가나 나나 수준이 똑같은 가보다. 도무지 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재미가 없어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뭐 그래야만 어른이라는 건가?  


머리가 벗어지는 건 쉬워 그걸 포기하는 게 어려운 거야


노력해도 안 되는 일에 열중하는 아빠의 뒤통수를 때리는 아들. 어른이 되어서도 이루지 못한 꿈을 놓지 못하는 어른들을 설명하는 말로 이보다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나이를 먹어도 꿈꾸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은 나름대로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어른들이 꿈을 갖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삶을 비참하게 느끼게 만들고 일상을 고단하게 하는 꿈이라면 평생 이고 지고 살 필요는 없다.


꿈 없이도 살아간다는 것, 그것 또한 재능이라는 작가의 말에 수긍은 간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처럼 사는 게 과연 답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삶을 남과 비교해서 비참한 건지 나 스스로 나의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정이 힘든 건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꿈도 여러 가지 종류의 꿈이 있다. 허무맹랑한 꿈을 꾸는 사람도 현실적인 대안을 가진 사람도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행복하다면 무엇이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꿈도 못 꾸는 세상, 꿈도 없는 사람은 너무 초라해 보이지 않나?

불가능을 인정한 포기와 가능을 일찌감치 접어버린 포기는 다르다. 해봤냐? 그래 해봤다! 다 해봤다! 말할 수 있을 정도는 해봐야 후회가 적지 않을까?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니 나는 어른이 아니라 해도 좋다. 나는 나대로 산다. 그게 편하다. 어른이라고 하고 싶어 어른다워지려고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릴 때라고 나는 믿는다. 어른도 각양각색이다. 꼰대가 널린 요즘 세상에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어른 타령인가. 이 부분은 나보다 젊어 보이는 작가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하지만 나보다 젊어 보이는 작가의 반짝이는 글 중에 글을 쓰는 형태가 나와 흡사하다는 걸 발견했다..


글을 써 나가는 동안 놀라운 점 하나를 발견했다. 어떤 생각을 하건 어떤 감정을 갖든 모든 글의 마지막은 꼭 이상한 다짐으로 끝난다는 거다. 나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다. 내일은 더 나은 내가 되어야겠다. 다 잘될 것이라 믿고 싶다… 이 무슨 때아닌 모범생 놀이란 말인가. 분명 마음이 답답해서 써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마치 누군가가 그 글을 읽기라도 하는 양 훈훈한 결과로 마무리하려는 강박이 느껴져 스스로도 황당했다. 그러다 보니 일기도 고친다는 친구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솔직할 줄 모르는구나. 솔직해지면 솔직해질수록 창피해지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너무 모범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육에 익숙한 건지 초등학교 글짓기 스타일이 평생 가는 건지.. 나도 모르게 마무리는 듣기 좋은 고정 답을 찾는 경향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누구나 그렇구나. 창피해도 솔직하게 쓰려 노력해 봐야겠다.


나 역시 나를 모른다는 생각으로 모든 생각과 행동에 대해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탐험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 탐험의 끝이 어떤 모양새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어쩌면 나만 아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 안다고 생각한 나에게 또 다른 모습이 있다는 것. 아무도 모르는 내 모습을 나만 알고 있다는 것, 어쩐지 신기하고 짜릿하지 않나.


이 책 중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한 페이지를 꼽으라면 이거다.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고 칭찬해주는 모습.




누구에게나 아무도 모르는 모습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내 모습을 나만 알고 있는 거라면
나, 대단하네
나, 대단하네


보노보노 원작자 이가라시 미키오  보노보노의 인생상담 최근 새로 발간되었는데  살짝 기대된다.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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