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어게인을 보고
포스터에서 감지되는 무언가가 있었지만 역시나 영화 원래 제목이 The Bachelor이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독신남? 홀아비? 정도 되겠다. 영화 제목을 홀아비라 하기엔 무언가 감동이 없다 싶어 의역을 해피 어게인이라 했나 보다. 하긴 과부, 홀아비 하면 왠지 청승맞고 슬퍼 보여 안 땡긴다 T T
예상대로 와이프가 암으로 죽고 혼자 남은 주인공 빌의 영화 시작 첫 멘트가 “여기서는 더는 못 살겠어”로 시작한다. 그리곤 바로 아들 웨스를 데리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짐을 싣고 LA로 이사를 한다. 부러웠다. 나도 그 마음을 알지만 빌처럼 그렇게 훌쩍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을 이년 하고도 삼 개월 동안 간직한 채 살고 있다. 그러니 그가 부러울 수밖에. 그토록 사랑하며 평생을 살았다는 것도 부럽고 61일이나 미리 죽을 걸 알고 있었다는 것도 부러웠다. 정신과 상담을 가서 본인 스스로 사람들이 자신을 Pre Bill, 와이프를 만나기 전의 재미없었던 빌과 After Bill, 와이프를 만난 후의 달라진 빌로 불렀다고 소개할 때 그가 얼마나 와이프를 사랑했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예측할 수 있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들 웨스가 엄마의 동영상을 혼자 반복 재생하는 부분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우리 큰아들이 생각났다. 속 깊고 정 많고 사려심 깊은 나의 아들.. 웨스 나이도 우리 아들 또래다. 웨스와 엄마의 즐거웠던 순간의 동영상, 그리고 죽기 전에 남긴 동영상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 기억하렴, 인생의 수많은 기쁨은 고통과 함께 오기도 한단다.”
“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통은 거부할 수도, 없는 척도 못해. 하지만 그 고통이 뭔지 제대로 바라보고 이겨나갈 방법을 찾는다면 내일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져 있겠지.”
그렇다. 살다 보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나는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고통이 밀려오지만 피할 수 없다. 나 스스로 내면을 바라보고 슬픔과 고통의 근원을 발견하고 나를 보듬고 이겨내는 수밖에.. 나는 이 영화를 절대로 우리 아들들과 같이 보지 못할 듯하다. 큰아들이 이젠 울고 싶지 않아서 이런 류의 슬픈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2년이 넘었지만 그 아픔이 평생 갈 테지..
웨스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엔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세상 모든 게 싫었던 시기를 헤치고 나와 이제서야 남은 가족과의 행복을 찾으며 자신의 길을 찾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쓸데없이 감상에 젖기 싫은 그 마음을 왜 모르겠니. 언젠가 그런 슬픈 감정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다독이는 성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를 보며 자꾸만 주변에 떠 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감정이입이 되었다. 사실 나이가 들다 보니 예전에는 드라마나 영화의 일이겠거니 했던 많은 일들이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영화가 현실을 바탕으로 꾸며진 얘기기도 하지만 이름만 바뀐 실화인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튼 빌이 우울증이 깊어져 입원을 하고 전기치료를 받고 약물을 복용하지만 차도가 없자 아들 웨스가 화를 내며 말한다.
" 아빠도 엄마처럼 죽을 거면 죽어요, 우리 아빠는 이미 죽었어요. 예전의 아빠를 돌려 줘요… "
이 말을 들으며 나도 눈물이 났다. 때로는 아이들이 훨씬 강하고 어른스러울 때가 있다. 그만큼 회복 탄력성이 좋다. 나이가 들면 피부 탄력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마음의 탄력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때가 있다. 그런 때야말로 자식의 따끔한 충고는 정신이 번쩍드는 섬광과 같다. 정신과 병동의 전기 충격요법 따위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고 정신이 번쩍 나는 거다.
웨스와 아빠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의지가 되는 가족이지만 더불어 웨스의 여자 친구인 레이시에게 마을을 열고 진심으로 다가가는 과정과 빌이 카린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다시 사랑하며 상처를 극복하는가 보다. 제목의역을 Happy Again 으로 한 이유! 고통과 상처는 극복하고 다시 행복해 져라? 아니겠는가. 영원한 고통은 없다. 영원한 행복도 없지만... 힘들었다면 다시 행복해질 차례 인거다. 당신이 지금 힘들다면 너무 행복해서 힘들 차례인거고 지금 너무 행복하다면 힘들만큼 힘들어서 아닐까? 난 힘들만큼 힘들었나보다. 지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