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힘들땐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nny May 05. 2018

너무 늦은 때는 없당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를 읽고

Anna Mary Robertson Moses 할머니 참 대단한 분이시다.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그림을 시작한 나이가 76세,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었고 93세에 타임지 표지모델을 하셨다니.. 101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기셨다. 그러니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할밖에.. 할머니 다큐멘터리가 제작이 되기도 하였다는데 장수 비결을 묻자 “나잇값을 안 하면 된다” “ 요즘 100살까지 안 살면 명함도 못 내미니 꼭 100살까지 살 거다”라고 하셨단다. 역시 유쾌한 할머니의 장수 비결 너무 마음에 와 닿는다. 나잇값을 안 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 ‘ 늙어서 안돼, 이 나이에 무슨..’ 하는 생각을 버리고 배우고 노력하는 자세야 말로 책을 보며배우고 싶은 할머니의 자세다.  



추억과 희망은 참으로 묘한 것이, 추억은 뒤를 돌아보는 거고 희망은 앞을 내다보는 거지요. 추억은 오늘이고 희망은 내일입니다. 추억은 머릿속에 기록된 역사이고 또한 화가와도 같아서 과거와 오늘의 그림을 그립니다.


글을 시작하는 할머니의 말씀처럼 추억을 뒤돌아보며 할머니는 그림을 그렸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할머니처럼 예쁘게 그림을 그릴 재주가 있다면 그려보고 싶기도 하지만 내게는 그림보다는 글이 편하다. 나의 어제를, 나의 오늘을 글로 쓰며 무언가에 집중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늦은 때란 없음을 공감한다. 내가 47세에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앞으로 50년은 더 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나잇값을 안 하고 건강을 유지하면 110세 정도 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100세에 타임지 모델이 될지 또 누가 아는가? ㅎㅎ


아무튼 할머니가 자란 푸른 초원과 숲에 둘러 쌓인 농장을 보면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만들고 할머니는 그 풍경을 화폭에 담는다.  



나는 언제나 보기 좋고 즐거운 풍경을 그립니다. 알록달록하고 북적북적한 게 좋아요… 그림을 그릴 때 나는 풍경을 관찰하고 또 관찰합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알록달록 적부적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 어느새 그 풍경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멀리 보이는 산, 나무, 집들과 가까이 보이는 사람들, 말들을 세밀하게 눈에 담아 가며 그리셨을 할머니가 떠 오른다. 할 머 니 참 정겨운 단어다. 엄마 말고 정겨운 단어 하나를 더 뽑으라면 할머니 아닐까? 내게 우리 외할머니는 하얀 머리를 참빗으로 쭈욱 쭈욱 빗어 쪽을 지시고 버선에 한복을 입고 허리를 칭칭 동여매시고 스웨터를 걸치시고 엄청 빠른 초스피드로 바삐 걸어가시던 모습으로 남아있다. 목소리는 얼마나 크신지 “ 야 이놈들 어서 와서 밥 묵어라” 하고 소리를 치시면 십리 밖에서도 듣고 밥을 먹으로 외갓집으로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재개발해서 아파트만 들어선 그곳이 내겐 유일한 외갓집의 추억이 남은 곳이다.  


지금 내 추억을 그림으로 그리면 산동네 비탈진 곳에 산에서 내려오는 개천이 있고 그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백개는 되는 것 같은 계단이 있고 그 계단 중턱에 자리 잡은 외갓집 마당에 들어가면 왼쪽으로 달동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조그만 마당을 둘러싸고 작은 문간방, 중간방 그리고 안방, 부엌이 보인다. 무엇보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절벽 꼭대기에 자리 잡은 듯했던 푸세식 화장실이다. 그때는 화장실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끝이 보이지 않아 내가 응가를 하면 한참 있다 퍽 하고 지상에 착륙해 ‘도착했습니다’ 하고 말하는 양 느껴졌다. 밤에는 무서워서 쉬도 못하고 요강에다 누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개도 큰 게 한 마리 있었는데 컹컹 짖어대는 게 무서워 집에도 못 들어가고 문밖에서 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어렴풋한 기억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디선가 잡아먹으셨다는 소릴 들었던 것 같다. 그때 뛰어놀던 동네가 내 어린 시절 가장 즐거웠던 외갓집 풍경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12살부터 가 일을 하다 남편을 만나 농장 생활을 평생 하셨다.  


농장에서는 늘 그날이 그날 같고 달라지는 거라곤 계절밖에 없지요.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나는 옷을 갈아입고 불을 지피고 찻물을 끓인 다음, 닭장으로 나가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들어와 아침식사를 차리고 일꾼들을 식탁으로 불러 모읍니다… 규칙적인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월요일엔 빨래를 하고 화요일엔 다림질과 수선을 했고 수요일은 빵을 굽고 청소를 했고 목요일엔 바느질을 했고 금요일엔 바느질과 더불어 정원이나 화단 가꾸기 같은 잡다한 일들을 했어요..


할머니 말씀처럼 늘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가 쌓인다. 농장뿐 아니라 바쁜 도시에서도 늘 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안치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커피를 마시며 글을 몇 편 읽다가 아침밥을 차려 큰아들 작은아들 차례로 학교에 보내고 출근길에 나선다. 오후에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개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고 뉴스를 보고 책을 좀 읽다 잠자리에 드는 그렇고 그런 일상이 반복된다.  할머니는 일상을 그림으로 남기셨고 나는 글로 남기는 중이다. 그냥 흘려보내면 일 년이 한 달처럼 십 년이 일 이년처럼 후딱 지나가 버린다. 그러니 뭐라도 남기며 오늘을 기억한다.  


내가 만약 그림을 안 그렸다면 아마 닭을 키웠을 거예요. 지금도 닭은 키울 수 있습니다. 나는 절대로 흔들의자에 가만히 앉아 누군가 날 도와주겠거니 기다리지 못해요. 남에게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도시 한 귀퉁이에 방을 하나 구해서 팬케이크라도 구워 팔겠어요. 오직 팬케이크와 시럽뿐이겠지만요.


내가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있지 않으니 전시 업에서 물러나게 되면 무슨 일을 할까? 팬케이크라도 구워서 팔겠다는 할머니 말씀처럼 늙어도 일을 해야 한다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닭을 키우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식물을 키워보고 싶다. 블루베리 농장 같은 데서 일을 하며 재배를 해보고 싶다. 작년에 둘째랑 블루베리 농장에서 사 온 모종이 우리 집 화분에서 열심히 자라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쯤 열매가 열릴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당장 먹을 수 있는 토마토, 고추, 상추, 오이를 집 마당 작은 화단에 키우고 있다. 올여름에 주렁주렁 열리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 전원생활을 하게 될지 도시에서 화단이나 가꾸면 살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자라는 걸 보는 게 큰 즐거움이다.


열심히 자라고 있는 블루베리


고추와 방울토마토 모종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처럼 내가 늙어 죽어도 남아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 싶다. 지금으로선 내 “책”이 되었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기에 충분히 가능한 꿈이라 생각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충만한 삶을 살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