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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May 26. 2018

여행도 배워가며 기술적으로

알랭 드 보통 여행의기술을 읽고

강철 빛깔의 회색도시 런던에 겨울이 찾아오고 동네 공원은 황량한 진창으로 뒤덮여 잠복해 있던 슬픔이 행복을 찾거나 이해를 받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회의가 드는 찰나에 알랭 드 보통은 광고전단을 발견한다. “ 겨울 태양”이라는 제목과 야자나무, 에메랄드 빛 모래 해변!  


이 팸플릿을 만든 사람은 어두운 직관을 통해서 야자나무, 맑은 하늘, 하얀 해변을 보여주는 노출 과다의 사진들, 지성을 모욕하고 자유의지를 무너뜨리는 힘을 지닌 이런 사진들에 사람들이 쉽게 현혹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삶의 다른 영역에서 라면 회의와 신중함을 자랑할 만한 사람들도 이런 요소들과 마주치면 원시적인 순수와 낙관의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가계에 파탄을 일으킬 정도로 돈이 많이 드는 긴 여행이 열대의 바람에 살짝 기울어진 야자나무 한 장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기도 하다.   


국적을 불문하고 인간은 다 똑같은가 보다. 회색 빛 겨울에 쨍한 태양이 그리워 열대지방으로 휙 떠나고 싶은 욕망은 tvN 윤 식당을 보다 나만 느낀 게 아니었나 보다. 하긴 겨울 내 비 내리는 런던에 살면서 햇빛이 그리운 건 너무나 당연한 욕구니 가계파탄을 일으킬 지라도 지름신이 강림할 만 하지.. 하지만 그가 막상 카리브해 바베이도스에 도착해 일광욕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누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나” –즉 나의 의 자아의 의식적인 부분-는 사실 신체적 외피를 떠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방값에 점심이 포함된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두 시간 뒤 파파야 나무가 있는 호텔 식당의 구석자리에 앉아 있을 때 (점심과 지방세 포함이었다), 일광욕 의자에서 몸을 떠났던 나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섬을 완전히 떠나 내년에 시작하기로 한 골치 아픈 프로젝트를 찾아갔다…. 미래에 대한 근심은 우리의 마음을 떠나지 않은 듯 하지만 정작 그것을 돌이켜 보는 것은 안타깝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장소로부터 돌아오자마자 기억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바로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생각하며 보낸 과거의 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어떤 곳에 대한 기억과 그곳에 대한 기대에는 모두 순수함이 있다.


그렇다.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평생을 사는 게 익숙해진 우리는 여행을 가서도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내일 일을 걱정하며 시간을 보낸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서 결제 순간을 걱정하고 쇼핑하는 순간 적자 난 가계부를 들여다본다. 물론 정해진 예산을 신경 쓰는 정도면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핸드폰 톡을 하고 노트북을 펴고 이메일을 확인하는 정도면 거의 중증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갈 줄 착각하고 내가 없으면 회사가 멈출 줄 알고.. 물론 한때였지만 그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된 후에야 여행을 진심으로 즐기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여행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작가의 말처럼 상상과 기대로 가득 차 있는 순간, 바로 여행을 떠나기 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데제상트는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더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실제 경험에서는 우리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 때문에 정작 우리가 보러 간 것은 희석되고 만다. 우리는 근심스러운 미래에 의해서 현재로부터 끌려 나온다. 당혹스러운 신체적, 심리적 요구들 때문에 미학적 요소들의 감상은 방해를 받는다. 나는 데제 생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냥 집에 눌러앉아 얇은 종이로 만든 브리티시 항공사의 비행시간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여행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


우리도 TV에서 방송되는 온갖 여행 관련 프로그램을 보며 부러움을 타고 현지 식당에 날아가 뿅 가게 맛난 현지식을 한입 먹고 싶은 충동을 얼마나 많이 느꼈던가. 하지만 정작 여행 가서 현지 식당 한 두 번 다녀온 뒤에는 속이 니글거리고 뭔가 먹다 만 느낌, 속이 허전한 느낌에 컵라면을 뜯고 햇반을 데우며 어떻든 내일은 한국식당을 찾으리 다짐하며 숱한 밤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런 것이리라. 상상만으로 여행을 열두 번도 더 다녀왔지만 막상 먹어보면 이 맛이 아니었는데 싶은 순간들..


보들레르는 평생 여행에 대하여 양면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여행을 하고 싶은 욕망에는 항상 공감했으며 늘 그런 바람을 품고 있었다. 그는 모리셔스를 떠나 파리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어딘가로 떠날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삶은 모든 환자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다. 이 환자는 난방장치 앞에서 앓고 싶어 하며 저 환자는 창가에 누워 있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않는다.”


보들레르 말에 이보다 더 공감이 갈 수가 없다. 나 또한 늘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는 강박감을 겪고 있는 환자라 그런가 보다. 삶이라는 병원을 퇴원해야만 끝나는 병이라면 죽어야 이 병을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들레르는 여행에 대한 백일몽을 그가 “시인”이라고 묘사하는 고귀한 영혼, 탐구하는 영혼의 표시라고 여겨서 귀중하게 생각했다. “시인”은 다른 땅의 한계를 잘 알면서도 고향의 지평 안에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의 기질은 희망과 절망 사이, 유치한 이상주의와 냉소주의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했다.  


보들레르 말대로라면 나의 백일몽도 시인으로서 인정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한 듯싶다. 나의 진자운동도 어쩌면 고귀한 영혼을 탐구하는 소중한 과정이 아닐까 위안을 삼아 본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을 위한 장소 중 휴게소, 공항, 비행기, 기차 등을 언급하며 모든 운송수단 가운데 생각에 가장 도움을 주는 것은 기차라고 말한다.  


배나 비행기에서 보는 풍경은 단조로워질 가능성이 있지만 열차 밖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무언가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몇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꿈을 꾸다 보면  나 자신에게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즉 우리에게 중요한 감정이나 관념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 가구들은 자기들이 불변한다는 이유로 우리도 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정적 환경은 우리를 일상생활 속의 나라는 인간, 본질적으로 내가 아닐 수 도 있는 인간에게 계속 묶어두려고 한다.    


그러네.. 공항 근처에만 가도 설레고 기차소리만 들어도 맥박이 빨라지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 을 텐데 이렇게 깊게 진지하게 자세히 다른 관점에서 글을 쓰다니 참 대단한 사람이네. 역시 베스트셀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듯..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 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술술 진행되어 간다. 해야 할 일이 생각뿐일 때에 정신은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남의 요구에 의해서 농담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투를 흉내내야 할 때처럼 굳어버린다. 그러나 정신의 일부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생각도 쉬워진다.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췌만 하다 시간이 다 가게 생겼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특히 워즈워스 시에 영감을 준 윈더미어, 레이크 디스트릭트 같은 시골 대비 도시에 대한 언급은 정말 요즘 같이 미세먼지, 황사에 찌들어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워즈워스는 자연이 우리로 하여금 삶에서 그리고 서로에게서 “ 바람직하고 선한 모든 것을 구하게 한다”라고 주장했다. 자연은 “올바른 이성의 이미지”로 도시생활에서 나타나는 비꼬인 충동들을 진정시킨다는 것이다. … 자연의 유익한 영향에 대한 워즈워스의 주장의 요체를 따르면 생명이 없는 물체도 그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연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암시하는 힘이 있으며 따라서 크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미덕에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도시의 암울한 기운이 자연 속에서 정화되는 기운을 느끼게 되는 거구나.. 나도 워즈워스처럼 시골에 살면서 자연을 벗하면 시가 절로 나오려나? 갑자기 나도 이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글을 쓰고 싶어 지네.. 한 달 이면 답답해서 뛰쳐나오지 않을까 걱정은 되지만 올여름에 일단 일주일 살기 도전! 시인돼서 오는 거 아닌가 몰러^^


여행의 방법 중 러스킨의 가족 얘기도 나온다.

여름휴가철이면 이들 가족은 영국 제도와 유럽 본토를 여행했다. 단지 쉬고 노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들은 마차를 타고 천천히 여행했다. 하루에 40km 이상을 가지 않았고 몇 킬로미터마다 멈춰서 풍경을 감상했다. 이것은 러스킨의 평생에 걸친 여행 방법이 되었다.


우리도 고속버스로 고속열차로 비행기로 훅 갔다 훅 둘러보고 훅 돌아오는 여행 방식을 벗어나 천천히 아름다움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올여름 휴가는 꼭 실천해 보고 싶다. 빨리 많이 말고 천천히 아름다움을 찾는 여행을..


알랭 드 보통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도시는 변함이 없고 날씨는 여전히 암울하여 집에 있다는 것에 절망을 느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팡세 말을 빌면 “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당신은 여행 후 집에서 절망을 느끼는가? 자신의 방에서 고요히 머무르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내게 묻는다면 절망보다는 편안함을 고요함에서 평화를 느끼는 쪽이라 생각한다. 가끔 떠나는 게 여행이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싶은 건 확실히 아니라는 게 여행자와 떠돌이의 차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확실히 배울게 많은 책이다.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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