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감동은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 어떤 대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감동을 불러일으킬 때 꼭 어떤 외부의 대상이 있을 필요는 없다. 자신 안에서 느닷없이 일어나는 어떤 지각도 감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말 어법에는 잘 안 맞을 수 있다. 감동으로 번역되는 독일어 ' Erschütterung'은 ' 뒤흔듦'이라는 뜻을 지니는데 그 안에 '듬성듬성한'을 의미하는 'schütter'를 포함한다. 단단한 것이 듬성듬성해지면 무너져 내린다. 이러한 의미의 감동을 벤야민은 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 찾아낸 이야기이다. "할머니의 죽음은 프루스트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구두를 벗으려는 순간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왜일까? 그가 몸을 굽혔기 때문이다." 어떤 특별한 몸동작 하나가 기억과 슬픔을 야기한다는 말이다. 이 말에는 몸과 정신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벤야민의 지각 이론이 깔려 있다. 느닷없는 슬픔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내면 안에 쳐진 칸막이 벽들이 무너진다."라고 벤야민은 말한다. 벽들이 무너지는 "멈춤의 순간" 그 벽 안쪽에 들어있던 감정, 생각이 느닷없이 떠오른다. 내게는 그러한 순간이 다른 계기로 찾아온 적이 있다. 어떤 책을 다 읽었는데 벤야민이 말한 의미에서의 감동 Erschütterung 이 일어났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말에서 떠올리는 그러한 경험과는 다른 감동이다. 그것은 수년간 억눌러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그러한 기억으로 파생된 우울이었다. 시몬느 보봐르의 『제2의 성』이라는 책이었다. 왜 하필 그 책이 그런 현상을 불러온 것인지, 내면의 칸막이 벽을 무너뜨린 것이 이 책의 어떤 구절인지 아니면 책의 어떤 인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고 3 때 심장마비로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지 않고 입시에 몰두하던 시절, 이러한 기억이 느닷없이 떠오르면서 우울에 빠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난 때였고 그때까지도 별다른 기억 없이 잘 지내다 경험한 거라서 좀 힘들었다. 흔히 사용하는 우리말 '감동'과는 다른 의미와 어감으로 벤야민이 설명하고 있는 감동, 즉 뒤흔듦과 무너짐의 순간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느닷없이 뒤늦게 찾아온 프루스트의 슬픔과 유사한 것으로.
※『일방통행로 · 사유 이미지』, 벤야민 선집 1권, 194-195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