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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애 Aug 02. 2020

벤야민이 노동을 비판한 이유

  

 공장 노동을 딱 두번 해보았다. 유학 시절  갑자기 돈이 끊어져서 기숙사비도 낼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어서였다. 연중 휴가를 떠난 독일 노동자들의 빈 자리를 채우는 아르바이트는 임금이 꽤 높았다.두 달 정도 일해서 번 돈은 아주 절약하면 일년까지도 쓸 수 있는 돈이었던 것 같다. 이후 장학금을 타게 되어 여름 방학에 슈트트가르트에 내려가는 일은 더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슈트트가르트는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였다. 독일 북부에서는 볼 수 없는 포도밭을 근교에서 볼 수 있는 이 도시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수도이자 제조업의 중심지이기도 해서 메르세데스 벤츠와 포르세 본사가 거기 있다. 아르바이트를 한 공장 이름은 당연히 잊었지만 당시 맡은 일은 기억에 생생하다. 두번째  공장이 더 기억이 난다. 무슨 부품을 만드는 곳이었는 데 그곳에서는 한 20센티 정도의 쇠 막대를 똑바로 펴는 일을 맡았다. 일종의 망치에 해당하는 기계의 판 위에 막대를 올려놓으면 휜 정도에 따라 눈금의 바늘이 좌우로 흔들린다. 많이 휜 막대일수록 흔들리는 진폭이 크다.  바늘이 흔들릴 때 레버를 아래로 단번에 내리면 눈금이 멈추게 된다. 멈추지 않으면 아직 막대가 휘어 있다는 뜻이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아줌마가 오더니 웃으면서 "nicht kaputtmachen!"이라고 했다.  nicht는 no라는 뜻이라 망가뜨리지 말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kaputtmachen' 은  '지쳐서 녹초를 만들다'는 뜻도 있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단순해도 너무 단순한 동작이라 쉴 새 없이 반복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보였나 보다. 강당 같이 큰 작업실 벽 한가운데 높이 시계가 있었다. 일을 하면서 종종 시계를 쳐다보았는데 시간이 안가도 너무 안갔다. 그렇게 단순한 동작을 그렇게 반복해본적이 없었다. 마르크스의 '소외' 개념 조차 사치스럽게 여져졌다.아무리 비참한 현실을 다루어도 이론에서 그것은 승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벤야민은 공장 노동을 도박과 비슷하다고 했다. 도박의 신기루 같은 성격은 없지만 의미있는 경험으로부터 차단되었다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수공업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연습'은 공장제 수공업에서도 여전히 적용되던 원칙이었다. 즉 연습의 기반 아래 모든 특정한 생산 분야는 경험을 서서히 완성해간다... 비숙련공은 기계의 '훈련'에 의해 가장 치명적으로 위엄이 실추된 노동자이다. 그의 노동은 경험이 침투되지 못하도록 밀봉 처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그의 노동에서 '연습'은 그 권리를 상실했다... 비숙련공의 노동에는 도박을 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신기루 같은 모험은 결여되어 있으나, 공장에서 일하는 임금 노동자들의 활동은 헛됨, 공허함, 완성할 수 없음 등과 같은 특징 등을 지닌다는 점에서 도박과 유사하다. 기계가 움직일 때의 급격한 충격은 도박에서의 한탕(coup)에 해당한다. 기계를 움직이는 노동자의 손동작은 앞선 동작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 앞선 동작과 어떠한 상관관계도 이루지 않는다. 두 작업 모두 내용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 제정기의 파리 ·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외』, 217-220쪽)     

벤야민에 의하면, 아무리 일해도 숙련공이 되지 않는 노동, 아무리 내기를 걸어도 소망을 이루는 것과는 거리가 먼 도박, 아무리  다녀도 사진 밖에 남지 않는 여행,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는 미디어 소비는 모두 '경험'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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