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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애 Dec 18. 2020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변증법적 이미지


브라질 출신 작가 바스콘셀로스가 1968년에 발표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자전 소설이다. 국내에서는 1978년에 처음 소개된 후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고 있다. 이 소설은 어린이와 학생 추천도서 목록에 속하지만 어른을 위한 소설이기도 하다. 십여 년 전에 우연히 읽고 묘한 여운과 깊은 감동에 젖었던 기억이 있다.

형제가 많은 집안막내인 제제는 아버지의 실직 이후 어려워진 가정 형편으로 너무 일찍 가난과 고통의 세계를 접한다. 어머니와 큰 누나는 저녁 늦게까지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 생계를 담당한다. 작가는 제제를 "슬픔을 조각조각 맛보아야 하는 아주 슬픈 어른"이라고 소개한다. 가난한 집 아이인 제재는 빈부격차라는 사회 현실로부터도, 사회적 차별과 편견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다. 식구 중에서 큰누나가 제제를 유일하게 귀여워해 주지만, 제제가 자라는 환경은  아이들을 보살피고 소중히 여기고 귀여워하는 전형적인 시민 가정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아이를 작은 어른이 아니라 어른과 다른 독특한 존재로 보는 시각과 "귀여워하기"라감정은 근대 이후 비로소 형성된 것이다. 『아동의 탄생』을 쓴 필립 아리에스에 따르면, 중세까지만 해도 아이는 작은 어른일 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년기에 대한 관심은 근대 시민사회의 발전과 연관이 있다. 직업과 신분이 자식에게 자동적으로 상속되지 않는 시민 사회가  신분사회를 대체하게 되면서 미래의 삶을 위한 인격형성에서 중요한 시기로 유년기가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일종의 문화적 현상으로 유년기를 '발견'한 이후, 19세기에 이르면 아이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결핍의 존재가 아니라 자율성, 독자성을 지닌 존재라는 의식이 싹트게 된다. 이러한 의식의 이면은 아이를 어른들의 세상에 노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되어야 할 존재로 보는 시각이다. 유년기의 독자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아이들은 점점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차단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화된 유년기와는 거리가 먼 제재에 대한 연민이 들기도 하고, 되돌아갈 수 없는 유년에 대한 그리움이 환기될 수다. 그러나 그보다  '라임'이 내게 준  감동은 독일어 ' Erschütterung'으로 설명될 수 있다. ' Erschütterung'은 ' 뒤흔듦'이라는 뜻을 지니는데 그 안에  '듬성듬성한'을 의미하는 단어 'schütter'가 포함된다. 단단한 것이 듬성듬성해지면 무너져 내린다. 이런 의미의 감동은 느닷없이 떠오른 기억에 의해 야기되기도 한다. 프루스트의 경험은 한 예가 된다. 벤야민이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각별한 사이였던 할머니의 죽음처음에는 프루스트에게  전혀 현실감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구두를 벗으려는 순간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특별한 몸동작 하나가 기억과 슬픔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내면에 쳐져있던 칸막이 벽들이 무너지는" 순간,  벽들이 무너지는 "멈춤의 순간", 그 벽 안쪽에 숨어있던 감정, 생각, 기억이 느닷없이 터져 나온다.  


내게 '라임'이 주는 감동은 이런 의미의 경험을 불러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의 달동네에 사는 한 아이의 유년기를 그린 위기철 작가의 『아홉 살 인생』역시 유년기의 현실을 그리지만 '라임'에서와 같은 감동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아홉 살 인생'에서는 유년의 경험에 깊이 흔적을 남긴 비정한 사회의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인공 여민의 불행한 유년기에 대한 연민과 함께 그 원인이 된 사회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보내게 된다. 그것은 내면의 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일어나는 감동은 아니다. 이 감동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될 수도 있다.


벤야민이 과거를 인식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변증법적 이미지는 기억에 의해 떠오르는 과거의 이미지가 지닌 독특한 시간성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기억은 "과거를 탐색하는 도구가 아니라 과거가  비로소 펼쳐지는 무대"이기 때문에 기억된 이미지는  비록 그 이미지가 과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해도 기억하기 전에는 결코 본 적이 없던 이미지라는 점에서 현재에 위치한다. 기억은 "우리가 미처 주인 노릇을 해보지 못한 삶, 우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우리가 그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한 삶의 흔적들"에 조명 비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명은 과거를 변증법적으로 침투하면서 현재화한다. 벤야민은 이를 "지나간 것 안에 놓여 있는 폭약에 불을 붙인다."라고 비유적으로 기술한다.  과거가 펼쳐지는 방식은 불연속적이다. 그것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어떤 사물들, 장소들이 촉발하는 기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방통행로』에서 거리를 산책하다 우연히 마주친 사물이 촉발한 단상들을 기록했듯이,  유년시절 회상도 유년의 삶에 깊이 각인된, 그동안 잊고 있던 사물들, 장소들에 의해 촉발된다. 그 안에 저장된 잊힌 것은 지나간 것이나 그것을 비추는 조명은 현재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조명에서 과거와 현재는 중첩되는 것이지 시간적으로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라임'의 감동은 복고적이거나 감상적이 아니라 현재에 일어나는 뒤흔듦이다. 그러한 뒤흔듦은 유년의 세계를 현재와 동떨어진 과거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에 있어 완결되어야 하는 것, 복구되어야 하는 것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에서 제제의 유년기는 슬픈 유년기로만 떠오르지 않는다. 제제는 하루하루의 비참한 현실을 유쾌하고 기발한 놀이의 세상으로 변용시킬 안다. 평범한 마당의 풍경은 사자, 표범, 원숭이 등이 사는 동물원이 되고, 마당을 가로지른 가닥에 단추를 끼우면 그것은 바위산의 케이블 카가 된다. 아이들은 아무리 슬프고 삭막한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상상력을 빌어 "유사성의 상태 속에서 왜곡된 세상"을 만들어낼 줄 안다. 제제는 마당에 는 작은 라임 오렌지 나무와도 대화를 한다. 나중에 멋진 나무가 될 수 있다는 큰 누나의 말에 감복한 순간, 제제는 마음으로 나무를 받아들이고 그 순간 나무는 제제에게 말을 건다.  사물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는 세계는 신비주의자들이 꿈꾸는 교감의 세계이다. 세상과 만나는 아이의 이러한 지각 방식은 아직 자아의식이 발전하기 이전에 고유한 방식이다. 그것은 상당히 다른 사물 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또 유사성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능력, 즉 미메시스 능력이거나 아직 현실 원칙을 내면화하지 못한 바람에 외부세계와 자기 몸을 하나로 느끼는 신체적 반응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문명화된 프로그램에 따라 교육을 받고 사회화되면서 아이의 이러한 지각 방식을 잃어버린다. 모든 사람에게 유년의 순간들은 일생에  단 한번 있 일회적인 순간들이고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순간들이다. 따라서 유년에 대한 회상은 향수나 그리움, 상실감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그런 상실감이나 그리움 대신 유년기에 대한 회상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유년의 이미지를 기억에 의해 현재화된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원천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벤야민에 의하면, 원천적인 것은  시간을 초월한 이념과는 다르다. 원천은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역사를 초월해 있는 것 아니라 역사적 사실들 안에서 비로소 발견되고 복원되는 것이다. 마치 깨어진 항아리의 조각들을 이어 맞추면서 항아리의 형상을 복원하듯이. 따라서 원천적인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중적인 통찰이 필요하다.  즉, 한편으로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것 속에서 진리 혹은 이념의 흔적복원해내는 것,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찾아낸 것을 아직 미완의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과의 첫 만남을 특징짓는 유년의 지각 방식에는 세계 인식의 원천적인 것이 들어있기 때문에 소중하다. 개인의 삶의 차원에서 유년은 상실된 것이지만,  유년에 대한 기억은 원천적인 것을 복구하고 재건하는 무대가 될 수 있다.  


"관습의 장막이 오랜 세월 동안 감광판에 필요한 빛을 가로막고 있다가, 어느 날 마치 마그네슘 분말에 불을 붙이기라도 한 듯 어디선가 빛이 생기면서 순간 촬영의 이미지로 감광판에 이미지가 찍힌다."(『베를린 연대기』)


이런 식으로 일어나는 유년의 기억은 서랍에 고이 보관해 가끔씩 꺼내 들어 향수에 젖곤 하는 이미지들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뒤흔드는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라임'이 준 감동에서 야기된 나의 기억도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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