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96

by 포근한 바람

네가 그때 친구들을 자주 데리고 와서, 저러다 대학 떨어지는 건 아닌가 내가 혼자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내가? 내가 그렇게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왔었다고? 그때 내 친구들은 다 독서실 다니느라 안 왔을 텐데. 그 때 왜 아이들 다 독서실에 다니고 나만 집에서 공부했잖아.


그랬지, 나중에는. 그런데 한 동안 아이들 많이 데리고 왔었어. 친구를 데리고 오는 건데 데려오지 말란 소리는 못하겠고, 속으로만 걱정을 많이 했지, 너 대학 못 갈까봐.


괜한 걱정이었네. 그 애들 데리고 와서 내가 뭘 했겠어? 공부했잖아.


그가 나에 대해 그런 걱정을 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내 기억에는 없는 과거의 일이라 이상하게 느껴졌던 내 고3때 얘기다.


이상하다, 그 때 우리 집에 와서 나랑 같이 공부하던 아이는 00이 뿐이었는데, 그보다 더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왔었다고? 자주? 초중등 때도 아니고, 그때?


그가 이야기를 해주긴 했지만 다시 돌이켜봐도 생각나지 않는 과거다. 어쩌면 그 시기 이전부터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서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건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반 친구 집에 놀러간 기억이 없다. 골목을 끼고 마주보는 집들 중 또래 아이들과는 이 집 저 집 내 집처럼 무리지어 놀러다니곤 했지만 그것도 거의 초등 저학년 때까지의 일이었다. 친했던 아이들은 학년이 높아지면서 그 부모가 아이들 교육을 서울서 시킨다며 아예 이사를 하거나 주소를 이전해서 전학을 시키면서 멀어졌다. 이후에는 누구 집에 놀러간 일이, 중학교 때 아주 친한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는 거의 없었다.


나와 아주 친하거나 친하지 않거나 아이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는 경우는 꽤 자주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집에 한 번 놀러왔던 아이들은


너희 엄마 참 좋더라.


는 말을 하곤 했다. 당시에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너희들에게는 친절했지, 우리 엄마가. 하지만 그 모습이 다는 아냐.


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다가, 한참 나중에야, 실은 그 아이들이 부러워했던 것은 내 엄마의 친절만이 아니라,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갔을 때 엄마가 맞이해주더라는 사실 자체였겠구나 짚어지게 되었으니. 결혼 초 매우 어려웠던 경제상황을 상당히 빨리 딛고 일어선 나의 부모와 달리 학교 아이들의 부모 중 상당수는 아직 재정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생계형 맞벌이 가정이 많았다. 그러니, 집에 돌아가면 맞아주는 이도, 맞아주는 이가 내주는 간식도, 놀거나 공부하고 있으면 엄마가 차려서 내주는 저녁도 없었을 것이니.


내게는 당연했던 일상이 내가 어울렸던, 실은 지금은 거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초등 중등 때 친구들에게는 매우 낯선 환경이었을 거란 사실을 당시에는 거의 알지 못했다. 그 친구들 중 누구도 나를 자신의 집으로 놀러오라 말한 적이 없어서이기만 했을까? 실은 자연스레 우리집으로 오게 되었다 기억하는 그 과정에 아이들은 은연중 자기 집 말고 맞아주는 어른이 있었던 우리 집에 더 오고 싶었던 것일까?


싫은 표정 않고 누가 오든 반가이 맞아주었던 엄마 덕에 그 날 그 시간을 따뜻이 기억하는 아이들이 많았다면 다행이었겠다, 자식의 친구들이라 해도 어른의 눈에 차이 나 보이는 행색과 행동들로 구별 짓고 다르게 대하는 어른이 그때라고 없었겠나 하는 생각까지 하다 보면 그가 그들에게는 정말 좋은 아줌마였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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