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97

by 포근한 바람

딸이 옆에 있으면, 대체로 슬몃슬몃 웃게 된다. 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우울했다가도 마음이 환해진다. 딸이 아기였을 때도 그랬고 가장 미울 때라는 네 살, 일곱 살 때도 그랬고 이제는 성인이 되어 내가 모르는 지점이 아주 많이 생겼는데도 그렇다. 어제 만난 듯이 늘 새롭고 이렇게 한결같이 기꺼울 수 있는가 날마다 신기한 존재.


내 마음이 그런 게지, 마음이란 게 그런 거지. 그런데 왜? 또다시 이제는 더 물을 수도 없는 그에게로 생각이 흘러가. 내 엄마만 그랬던 게 아니란 것 알고, 실은 부모가 되었다 해서 누구나 자식을 그런 방식으로 기꺼워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고 내가 만나는 마음이 아픈 이들도 대개는 비슷한 상처가 근원이 되어 주변을 찌르고 자신을 할퀸다는 것도 알아.


그렇게, 그도 그랬을 테지, 짐작을 하기도 해. 그래서, 내 맘으로 그와 화해했고, 그래서, 점점..... 아픈가. 그는 얼만큼 사랑받았을까, 사랑받고 싶었을까? 그가 자기 생에서 가장 많이 소망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 알지 못해서. 그저 내 눈에 비쳤던, 어느 순간 어느 장면 몇 개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그를 안다고, 이러저러해서 원망하고 이러저러해서 이해한다고.


그 모든 마음들이 그냥 내 맘. 물리적으로, 어느 시기까지는 그의 자매와 그의 엄마가 가장 가까웠을 테고 어느 시기까지는 그의 남편이, 어느 시기까지는...... 그 어떤 시기 동안 내게 사실은 실제의 그는 그렇게 크고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어서. 그래서 나는 또다시 그를, 모른다. 실재했던 그의 어떤 모습도, 그게 전부가 아니었으리라는 점만 짐작할 뿐.


지금 이렇게 손 끝에서 나오는 대로 글을 쓰는 이 시간 이 공간 이 상태의 나를 아무도 모르듯이 그의 삶, 그가 혼자였을 수많은 순간들을 아무도 몰랐을 테고, 그래서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산 것일까. 매일 스스로에게 부여한 역할과 과제를 수행하며 그때그때 느껴지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대로 살았까. 어떤 질문에는 답하고 어떤 질문에는 침묵하고 어떤 질문은 외면하면서.


그 고통의 밤들 중 여러 날 동안 그는 아부지에게 유언 비슷한 얘기를 하곤 했었다 한다. 누구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남기고 이것을 하고 싶었으니 저렇게 해주고. 날마다 얘기하면서도 내일이 있다고 여겼을 테니, 남겨둔 말이 있었을지도 몰라. 그 말이 있었더래도 그 마지막 그 시간에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졌고. 아무도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고.

작가의 이전글그 100일의 기록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