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61

by 포근한 바람

세심하고 자상한 거 하고는 거리가 멀었잖아, 엄마는.

뭐랄까. 생의 대부분을 살림을 살고 가족을 돌보는 역할을 떠맡아 살았지만 그는 섬세하게 누군가를 보살피는 데에는 재능이 없었다. 그러니까, 부부가 돌아가며 자주 아팠던 중에, 그가 아플 때에는 아부지가 그야말로 성심성의껏 그의 옆에서 그가 괜찮다 할 때까지 곰살맞게 시중을 들었다면 아부지가 아플 때 그는 아부지가 가장 원했던, 아부지 옆에 착 붙어서 보살피는 외의 모든 일을 다 했달까. 뭔가를 해달라 요청을 받으면 요령 없이, 마지못해 툭툭 해치우듯 하는 바람에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아파서 외로운 사람을 더 외롭게 하는 데 그는 재능이 있었다.


시어머니와 같이 살기 시작하고 두어 해 쯤 지났을 때 시누이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설을 쇠고 귀가하던 중에 음주 운전 차량이 달려들어 당시 한 차에 타고 있던 조카가 수술을 받을 정도로 다쳤고, 시누이 부부도 입원을 해야 하는 사고였다. 타박상을 크게 입었지만 조카와 달리 수술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시부모와 우리 가족은 서울의 거의 서쪽 끝에 살았고 시누이가 입원한 병원은 동쪽 끝이었는데, 딸의 입원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는 딸과 사위와 손자를 먹인다고 찰밥을 하고 반찬을 해서 날마다 실어 나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엄마라는 이는, 저렇게까지도 하는구나!


일을 마치고 시누이 가족을 병문안하러 갔을 때 시어머니는 이미 한참 전에 먼저 도착해서 딸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단지 모녀가 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을 뿐이었는데 오래 전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을 때가 떠오르며 뜻밖에 마음이 휑해져서.


다치기는 했지만 혼자서 입원생활을 할 정도이기는 했어서 가족 모두 손님으로 왔다가기만 했던 그 시기 동안, 그 역시 손님처럼 이따금 병실을 찾아왔고 그게 당연했으므로 잊고 있었는데. 모녀가 저런 모습일 수도 있구나, 이미 마흔이 넘은 딸을 일흔을 넘긴 엄마가 저렇게도 보살피네, 신기하고, 뜻밖에 부러움까지 몰려왔던 장면.


가족 모두 입원을 하거나 어디가 아픈 적이 한 두 차례는 있었으니, 우리가 아플 때 엄마가 어떻게 해줬더라 얘기 나누다가 주고 받은 말이었다.

"엄마는 아픈 사람 마음이 따뜻해지게 보살펴주는 데는 영 재능이 없었지."

괜찮다 했지만, 바라지 않는다 했지만, 사실은 아프다는 말이 입 끝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머리를 짚어주고 마음을 따스히 살펴주는 그런 엄마를 바랐던 때가 있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포기했겠지. 그러니, 나의 아이는 그런 보살핌을 지레 포기하지 않게, 유심히 잘 살펴줘야지. 그렇게, 이십여 년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