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를 건너 논과 논 사이를 지나 오르막 끝 산 아래 켠.
산비탈이 그대로 울타리인 아래 쪽에 장독대가 있고 그 앞에 일자형 초가집.
방, 방, 부엌. 창호지로 바른 방문. 부엌 옆 구석에 가마니로 입구를 막은 화장실.
일자형 건물에 달린 툇마루, 마루 아래 댓돌, 그 앞에 작은 마당. 마당 앞에 대문 없는 황매화 울타리.
나무 때는 냄새, 이웃에서 소에게 먹이느라 김이 오르게 끓이던 여물 냄새, 긴 부뚜막, 크고 새까만 가마솥, 부뚜막 맞은편에 높이도 쌓아올린 땔나무, 뒤란 장독대에 핀 보랏빛 도라지 꽃.
앞마당 작은 텃밭에 정갈히 자라던 푸성귀들.
내게는 이런 이미지로 남아있는, 그림책에 등장할 법한 그림 같은 집.
우물도 없고, 아마도 엄니가 자라는 중에는 수도도 없었을 테고, 펌프로 물을 퍼올렸을까, 아니면 저 내에서부터 물을 길어댔을까.
이제 와서는 그 집 어디에서 물을 받았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저 텃밭 부근에 외할머니의 사위들이 만들어주었다던 세면장이 있었지 싶으면서.
그러니까 저런 집에서, 외할머니와 그와 그 자매들은 사십 년 대와 오십 년대와 육십 년대를 살았던 것이었을 터인데,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에도 수도와 수세식 화장실과 보일러가 없었으니 아주 오랜 시간 불편하고 힘들고, 깨끗할래야 깨끗하기 어렵고 편리할래야 편리하기 어려운 시기를 그들은 살았던 것이고.
그러니, 그에게 이 세상은 계속계속 좋아지는, 살아볼만한, 괜찮은 곳일 수밖에.
나만 해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해온 일상을 떠올려보면 최소한 물질로는 더 편해지고 깨끗해지고 덜 힘들어졌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곤 하니.
나이 들수록
"이 좋은 세상"
이라 말하곤 하던 그가 경험했을 오랜 옛날들과 가시기 직전까지 그가 누렸을 조금씩 더 나아진 세상을 새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