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의 부부생활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렇게 안 맞으면 이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던 20대에, 꽤 자주 내게 아부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이혼은 하지 않는 그를 보며 실망을 했던가.
어느 시기 이후로는 두 사람의 관계가 나빠지든 좋아지든 둘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마음을 접었던 것 같기는 하다.
아부지에 대한 이런저런 하소연은 원래도 그와 더 친밀했던 동생이 더 들어주는 상황이 되었다. 결혼 후엔 더더구나 동생을 통해서 듣는 그의 얘기가 내가 직접 보고 듣는 것보다 더 많아졌다. 전해 듣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감정적으로 빠져들기보다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기가 쉬워서. 그의 시점에, 대체로 엄마 편에 서있던 동생의 관점이 더해진 나이 든 부부 사이의 일들을 전해 듣다 보면 같이 분개하기보다 저 관계가 저리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되곤 했다.
아부지는 자상한 편에 속했지만 그만큼 참견과 잔소리가 많은 쪽이었고 그는 대범한 면이 있었으나 그만큼 사람 마음에 대해 무심한 데가 있었다. 아부지는 가족 내에서라도 가부장의 권위를 세우고 싶어했는데 그 역시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서 아부지 뜻에 호응하는 듯 했지만 둘이 원래 가지고 있는 힘의 차이랄까, 상대에게 누가 더 기대고 싶어하느냐가 더 약자의 위치를 결정한다면 저울은 그가 있는 쪽으로 한참 기울었다.
그러니까 그는 밤이 무섭고 외딴 공간이 무서워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하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언제 어디서든 혼자라도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아부지는 항상 같이 할 누군가가 있어야 했고 어느 시기부터는 아마도 그 이가 자신의 옆에 가장 오래 있었던 아내여야 한다고 생각했지 싶다.
서로에 대한 그 필요의 차이가 불거질 때마다, 젊을 때는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억지와 폭력으로 나타날 때가 있었고, 그게 내가 그에게 이혼 운운 하던 지점이었다. 나이 들어서는 그 모든 불균형과 오래 쌓인 일종의 허기가 대개는 옆에서 듣기 거북할 정도로 강한 퉁박과 잔소리로 변했어서 그가 아부지에 대해 꽤 많이 힘들어했던 것으로 안다.
아부지를 두고 그가 그리 바쁘게 세상에서 벗어난 걸 두고 동생이랑은 다른 건 몰라도 아부지에 대해서는 엄마가 훨훨 자유롭다 느끼겠다고, 방해하는 이 없으니 저 세상에서라도 이 사람 저 사람 맘 내키는 대로 만나며 지낼지도 모른다고 농담처럼 주고받기도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