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65

by 포근한 바람

폴리애너라는 주인공 여자 아이 이름을 딴 동화책에는 오래 아파서 ‘신경질적인’ 이웃이 등장한다. 폴리애너 신드롬이란 이야기가 만들어질 만큼, 매사 긍정의 화신으로 성장한 폴리애너가 까다롭고 냉정한 이모 집에서 살며 이모의 이웃과 이모를 모두 자신처럼 생각하도록 영향을 미쳐서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이야기. 서양 이야기에는 늘 아파서 까다롭고 신경질을 잘 내는 친척이나 이웃 여성이 등장하곤 했는데, 아파서 신경질을 부린다는 게 어떤 건지 어렸을 때는 잘 이해를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이따금 아무 전조가 없다가 불끈 화를 내며 주변에 있던 나나 동생들을 야단치곤 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맥락 없는 분노여서 당연 이쪽에서도 황당하고 짜증도 나고 역시나 엄마는 이래서 싫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가 그런 행동을 할 때는 대체로 일할 때였고, 혼자, 일할 때였다. 그러니까, 다섯 식구 중 유일하게 집안 일을 도맡아 하는 이가 경험할 수밖에 없는, 어느 순간엔가 힘듦이 몰려오는 시점에, 누구에게라도 화를 낼 수밖에 없을 만큼 힘이 들었던 게라는 걸, 그와 같은 위치에서 온갖 집안일을 하는 중에야 떠올리게 되었으니.


어차피 누군가가 해야 할 일, 되도록 감정 상하지 않으며 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몸이 따라 주지 않으면 화가 난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알고 있어서 되도록 몸에 삶의 형식을 맞추려 하는 편이다. 정신력이 몸을 이겨낸다는 말, 적어도 내게는 맞지 않아서. 마음과 의지로 버티려다가 아프기만 더 아프고 신경질이 더 뻗치는 경험을 많이 했으므로. 그런데, 집안 일만 할 때는 그게 어느 정도 조절이 되지만 다른 일과 겹치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무리를 하게 되고 결국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마음이 불쑥 솟구치곤 해서.


다래를 이번 주말에는 따주어야 지난 해처럼 거의 다 놓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일찌거니 따기 시작한 게 거의 두 세 시간. 늦은 아점 먹고 그래도 연휴인데 바람이라도 쐬야지 않으냐고 수목원에 가서 서너 시간. 돌아오자마자 떠나기 전에 다듬기 시작한 다래 꼭지를 모두 따고 저녁을 먹고 마무리를 하고 일부는 술에 담그고 너무 익은 건 잼으로 만드는 중에 서서히 온 몸 여기저기에 통증이 몰려와 쉬어달라 아우성을 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진다. 밤 11시가 넘었으나 일은 끝나지를 않고 그 사이 각자 볼 일 마치고 쉬고 있는 가족들에게 슬슬 성이 나기 시작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며.


평소 같으면 관대히 넘어갈 그 순간 끝나지 않은 일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과 상대적으로 한가로워 보이는 모습에만 마음이 꽂혀 생각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하더니 가슴 저 아래서부터 스물스물 화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지며 결국!

다행히도 불끈 화를 내지는 않았으나 이런 식으로 엄마가 화나는 일이 많았겠구나, 일 하다가 불쑥 신경질을 내던, 피로와 분노가 얽혀있던 그의 얼굴이 떠오르며 몸이 힘들고 아프면 신경질은 당연히 나는 것이라고, 그러니 일의 진행도 진행이지만 몸도 잘 살필 일이라고. 그가 살아 생전에, 사이가 안 좋다는 핑계를 대며 어차피 엄마 일이라고 외면했던 일들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걸 그랬다고, 그런 생각들이 오고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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