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싶었던 게지.
그렇게 귀애하던 아들이 결혼을 해서 며느리와 한 집에 살게 된 그가 그 집에서 아들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일하는 며느리 뒷바라지를 충실히 해주다가 아들 며느리에게 집을 내어주고 아예 이사를 했을 때 했던 생각이다.
며느리에 대한 그의 이런저런 경험들을 전해 들을 때마다 전적으로 그의 입장에서 듣다가, 나도 며느리로서는 그의 눈에 못 들겠다 싶어서 대놓고 편은 안 들게 되었다가, 어떤 지점에선 다시 맞장구를 쳐주었다가, 저 얘긴 오랜 남녀 차별에 기반한 판단일 뿐 며느리 잘못이랄 수 없잖아 하며 돌아서서 오히려 그의 흉을 보았다가 여하튼 남의 집 식구에 대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하곤 했다.
10여 년을 아들 며느리와 살다가 모든 걸 다 내주고 자신의 집을 떠나온 결정적 이유로 그는
"며느리가 너무 말이 없어서 답답하다"
고 말하곤 했다. 저 말이 정말 이해가 안 되어서 이따금 직접 되묻기도 했었다.
"엄마, 나도 작정하고 말 않기로 하면 남부럽지 않잖아. 그런 나랑 살면서 연습이 되기도 했을 텐데."
반은 농담처럼 말할 때마다 그는 별 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따금 그가 바라던 시어머니 며느리 관계가 어떤 것이었을까 추측하다 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우아함'이다. 너무 가까워서 지지고 볶는 친밀함보다는 아마도 각자가 할 일을 하면서, 그가 그리는 '여자의 일'을 며느리가 충실히 하고 적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도 좋은. 아마도 나름으로는 좋은 시어머니이고 싶었을 그의 각오는, 시부모와 아들 며느리가 함께 사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채 실패로 끝나고 본격적인 시골살이가 시작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