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67

by 포근한 바람

“꼭 친정에 왔다 가는 것 같네요.”

결혼 후 어느 시점부터 시부모와 친정부모를 함께 모시고 여행을 다니곤 했다. 아부지끼리, 어머니끼리 12살 띠동갑이지만 대화에 올리는 화제가 공통되는 게 많았고 어머니와 시어머니는 관심사도 엇비슷해서 함께 어우러지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시어머니가 친구들에게 사돈과 여행 다녀왔다고 얘기하면 그 어려운 관계에 여행까지 다니느냐며 대부분 신기해들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내가 어릴 때 아부지는 그래도 집안 일을 나몰라라 하는 남편은 아니었으나 나이 들수록 평균적인 한국 남성이 그렇듯이 어디를 가나 밥하고 설거지하고 정리하는 일에는 통 관심을 두지 않았고, 시아버지는 워낙에 바깥 일만 하는 것이 체화되신 분이라 아마도 이 두 분만 모시고 매 끼니를 챙기는 여행을 하는 것은, 한 두 번 시도하다가 결국엔 점점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돈들이 함께 즐겁고 편안하게 일 년에 한 두 번 지속적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를 가도 몸을 사리지 않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두 여성 노인 덕이 매우 컸다. 밤늦게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이 드신 순으로 잠자리에 먼저 들고 새벽에 먼저 눈을 뜨기 마련인데 새벽 참에 잠들어 아직 비몽사몽인 시각에 시어머니와 어머니가 속삭속삭 이야기를 나누며 부시럭부시럭 아침 준비를 하는 소리를 듣게 되곤 했다.


친정 부모를 모셔다 드리고 시부모와 집으로 돌아오면 여행이 마무리 되곤 했는데, 친정 부모가 시골에서 본격적으로 사시게 되면서 이따금 시부모를 모시고 친정 부모 집으로 방문을 하는 일이 자연스레 생겼다. 워낙에도 시어머니와 어머니 모두 어릴 때부터 농사 경험이 있었고, 십 수년 밭농사를 지은 이력이 있어 두 분은 만나기만 하면 키우는 작물에 대한 정보와 수확의 즐거움을 나누곤 했었다. 밭작물이라면 시어머니도 고구마, 콩, 깨, 상추, 열무, 배추, 무 등을 해마다 심어 자식들 나눠주느라 바빴고 친정 부모는 저런 밭 작물 외에 복숭아, 매실, 양파, 복분자 같은 것들을 가져다 주곤 했었다.


맏딸이고, 아무리 어려워도 대놓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거 아니라는 신념이 있는 시어머니는 당신의 친정 어머니로부터 챙김 받은 일이 별로 없는 것에 대해 이따금 서운함이 담긴 표정으로 말하곤 했었다. 당신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뿌리 깊은 남녀차별 문화를 단단히 체화하신 분이라 유일한 남동생보다 무엇을 못 챙겨 받은 것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셨는데, 바로 밑 여동생이 친정 어머니에게 힘든 이야기를 해서 이것도 저것도 받아갔다시며 정작 당신은 힘들고 어려울 때도 그 친정 어머니가 전혀 모르시더라고. 여든 넘게 사시다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말씀하시는 것만큼 어느 정도는 원망이 섞인 얘기도 종종하시곤 하셨는데.

그런 시어머니가 사돈의 시골집에 함께 갔다가 떠나며 그가 챙겨주는 이것저것그것을 받으면서 촉촉해진 목소리로 하신 말이

“꼭 친정에 왔다 가는 것 같네요.”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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