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74

그렇게 짧을 줄 몰랐던

by 포근한 바람

삶과 죽음의 경계 같은 게 있다면 그 때부터 그런 시기였겠으나, 아직은 그래도 삶 쪽이었다. 희망이란 게 있었고, 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증상이라곤 내내 내리지 않는 미열만 있었을 뿐이니 가장 나쁜 상태라봐야 초기 암 정도가 아니겠는가고 모든 가족이 생각하고 있었을 때. 그러니, 어디에 이상이 생긴 줄만 얼른 알아내어 치료만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서로서로 격려하던 시간. 무엇보다 당자인 그가 가장 멀쩡한 상태로 가장 희망에 차 있었으니.


또래의 부모들처럼 그도, 아픈 건 참을 수 있고, 아파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아픈 건 결국 낫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초중고 통 틀어 지각 결석 조퇴 한 번 없었던 나에 비해 동생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한 두 번의 결석이나 지각 정도는 있었는데, 그 횟수에 비해 아픈 날은 조금 더 있었다. 그 아픈 날들에 그는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프라며 등을 떠밀더라고, 그 날들의 서운함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였으니. 그래서, 그가 참 자주 아픈 사람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던가.


사람, 모두가 다 혼자구나! 가족이란 게 참 별거 아니구나, 아픈 걸 나눌 수 없는 건 어떤 관계라도 마찬가지구나, 실감하며 온 몸에 찬 바람이 휘감듯 느껴진 건, 그가 아니라 아부지가 아플 때였다. 아마도, 그의 그 큰 수술들은 그보다 더 전에 있었고, 아직은 그날그날의 일상에만 관심 있었을 어릴 때여서인지 그가 부재할 밖에 없었다던 그 날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으나, 초등 고학년 무렵 어느 아침에 사라진 부모의 부재 이후 들려온 아부지의 수술 소식에, 아, 그가 그렇게 아팠다는데 나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구나, 수술까지 한다는데 이렇게도 느껴지는 게 없다니, 부모와 자식이란 관계에도 이렇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다니, 우리는 그냥, 남남이었구나 생각했던 날.


순수한 육체적 감각으론 아버지와 나 사이에 아무런 연결지점이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하게 된 날. 그리고 이후 부모의 크고 작은 입원과 퇴원과 부상과 질병은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여러 일 중 하나일 뿐이라 여기며 어느 정도의 불편과 어느 정도의 걱정과 어느 정도의 작은 변화를 겪다 보면 또 지나가는 일들이어서. 그러니, 그런 일들 중 하나일 뿐이라 여겼던 그의 마지막 병원살이에 대해 그렇게 무덤덤하게, 그렇게 당연한 듯 날마다 챙겨야 할 일을 챙기며 지냈다. 그 날들이 그렇게 짧을 줄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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