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75

by 포근한 바람

그의 어린시절을 거의 알지 못한다. 친정 부모에 대해 어느 정도 일정한 거리를 두며 챙길 것은 챙기고 모른 척 할 것은 모른 척 하면서 지내게 되면서부터 더욱 옛일에 대해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들은 그와 더 자주 가깝게 만났던 동생에게서 전해들어 안다.


이를 테면, 그가 나중에 가족에게 해주어야지 하며 새롭게 알게 될 때마다 음식 만드는 법을 적어 둔 공책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 수차례 이사를 하는 집에서 대부분 그렇듯이 어느 시점에선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레시피노트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동생은 아쉬워하며 알고 싶어했다.


자매들이 있었으니 아웅다웅 싸우기도 하고 즐겁게 지내기도 한 추억들도 있었을 텐데 그런 이야기도 별로 들은 적이 없었다. 외할머니를 중심으로 세 자매 모두 자신의 역할과 의무에 더 충실한 사람들이어서였을까 짐작을 해보기는 하는데. 어릴 때는 그에게 여형제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따금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만 왕래를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에게서 자매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가 시골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부터 막내 이모와 생각보다 각별해졌던가보다. 막내 이모는 지방 도시에 살면서 농사도 짓는 생활을 오래 해 와서 뒤늦게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정착을 하려는 언니에게 이런저런 조언과 도움을 많이 주었다 한다. 지금 그의 땅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과실수들을 이모를 통해서 구하고 심고, 도움말을 듣고 키웠다고.


그렇게 다시 친해진 몇 해를 보내서였겠지. 그를 보내놓고, 그 해 김장을 담그려고 심어두었던, 주인이 보살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쑥쑥 잘도 자란 그 많은 배추를 어찌할꼬 하다가, 여하튼 김장을 해보자고 동생과 의논하고서 혹시나 하고 이모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두 이모 모두 흔쾌히 같이 하마고. 하룻밤 이틀 낮을 꼬박, 김장을 하고 그가 그 해 밭에 심어놓은 작물들을 함께 갈무리하는 시간을 내주었다.


튼실하고 시퍼렇게 밭에서 피어난 배추들을 모두 뽑고 뿌리를 자르고 다듬고 미리미리 준비할 여력이 없었던 양념이며 다른 푸성귀들을 급하게 시장에서 마련하고 그 사이 배추를 절이고 무를 씻고. 그 사이 어디선가 각자가 혼자 있을 수 있었던 시간에 각자의 방식으로 울음을 쏟고 눈물을 닦았을까. 계속해서 떠들썩하면서 고요했던 그 환한 낮과 추웠던 밤에 함께 했으면 좋았을, 부재했던 사람에 대해 떠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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