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77

by 포근한 바람


그가 돌아가시고 그가 만들어두었던 고추장 간장 된장이 차례차례 바닥을 드러낼 때마다

“엄마랑 같이 담그며 배워두려고 했었는데, 이제 혼자 해야 하네.”

아쉬워하는 동생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한테 무엇을 하는 법을 배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구나, 싶어진다. 김장도 시어머니랑 하고, 시어머니도 장을 직접 담그시는 분이라 친정 엄마의 장이 아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러게, 같이 몇 번만 해보았으면 엄마 식의 장 담그는 법을 익히긴 했을 텐데 말이지. 어릴 때, 장 담그는 그의 근처에 있다 보면 고춧가루 섞기 전 뜨끈하게 끓인 엿기름을 먹어보라며 한 숟가락씩 떠주곤 했었는데. 따끈하고 부드럽고 달짝지근했던 그 맛이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해마다 담갔던 장과 달리 더 이른 시기부터 그가 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게 옷 만드는 일과 뜨개질이다. 어릴 때는 그가 떠준 조끼나 요즘 같으면 레깅스라고 부를 만한, 몸에 딱 붙는 쫄쫄이, 망토 같은 것들을 입고 다녔다. 초등학교 때, 동생은 빨간색과 흰색으로, 나는 노란색과 흰색 실을 섞어서 그가 떠준 모자까지 달린 망토를 입고 다녔다. 사선무늬를 맞대어 짜넣은 빨간색 치마도 있었구나! 플레어 스커트여서 차랑차랑했던 그 치마도 좋아하며 자주 입고 다녔네.


꽤 오랫동안 집안에 있었던 재봉틀이 언제 사라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단층집을 3층으로 올려지어 이사를 하면서 정리한 세간살이 중 재봉틀이 있었지 싶다. 발판을 앞뒤로 움직이면 바늘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던. 어느 날은 그가 옷감을 떠다 재봉틀로 똑같은 모양의 원피스 두 벌을 그야말로 ‘지어서’ 동생과 내게 주기도 했다. 짙은 자주색에 검은빛이 도는, 뒤에서 리본으로 묶게 되어 있던.


시어머니도 그렇고 그의 또래까지도 가만 보면 그 나이 대의 여성들은 참 할 줄 아는 게 많은 사람들이었다. 학교에서는 아예 가르치지 않거나 가사 시간에 맛보기 정도로만 가르치는, 살면서 할 줄 알면 유용한 기술들을 많이도 익히고 있었다. 그보다 더 연세 드신 시어머니는 술담그는 법도 알고 계셔서 어느 날인가에는 그 방법으로 한 번쯤은 술을 담가볼까 싶기도 하다. 별로 필요하지 않아서 하지 않았지만 실은 그도 술 담그는 법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뜨는 방식으로든 짓는 방식으로든 그가 옷 만드는 데 시간과 노력을 더 이상 들이지 않게 된 것은 아마도 옷감이나 실을 구해다 직접 만드는 것보다 옷 가격이 훨씬 싸진 시점부터였을 게다. 가만히 앉아서 사부작사부작 하는 일이라 보기에는 편안하고 쉬운 일 같지만 뜨개질이든 재봉질이든 옷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사실은 온몸이 쑤시는 통증을 견뎌야 하기도 하고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니 여러 면에서 비용이 훨씬 내려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할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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