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도움을 청했던 오랜 기억이다. 아직 살던 지역의 큰 하천이 정비되지 않았을 때였을 것이다. 여러 지역의 상습침수 지대가 그렇듯이 해마다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동네가 있었다. 비가 아주 많이 오면 몇몇 아이들 이름이 불렸고, 그 아이들은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비가 많이 오니 다른 지역으로 대피하라고 보내거나 가족과 학교로 오라고 했어야 했을 것 같은데 여하튼 수업 중에 갑자기 불려나가 귀가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고, 교실에 남은 아이들은 침수고 뭐고 그냥 학교에서 일찍 나가는 그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술렁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과수원이 택지로 변한 데 자리잡은 우리 집은 평지에 소위 신작로라고 불리는, 버스 두 대가 겨우 맞지나갈 수 있는 폭의 도로 건너편에 바로 학교 정문이 있는 동네에 지어졌다. 학교 앞 우리 동네는 그래서 평지이지만 전반적으로 지대가 높았다. 집이 지어지고 한 동안은 골목을 사이에 둔 앞집들의 뒷건물 바로 앞에 개천이 흐르게 두었다가 꽤 시간이 흐른 후에 전부 덮어버려서 홍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야트막한 산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아 그 산의 꼭대기까지 아이들이 놀이터를 삼을 수 있는 곳이어서 비가 아무리 많이 온들 그건 그냥 물웅덩이에서 신나게 놀 수 있는 즐거운 사건에 가까웠다.
중학교에 다닐 때 친해진 친구가 저 상습침수지역에 살았다. 소위 단짝 친구라 할만한, 꽤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냈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 집이 그 해 홍수로 물에 잠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집에 홍수가 났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마음이 들었던가보다. 그에게 친구를 돕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겠지. 그가 선뜻 같이 나서주었다. 쌀 한 말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사주었으니 나는 들고라도 가야 한다고, 그 쌀을 들고 친구 집까지 그와 함께 갔다. 집 안까지 들어찼던 물이 빠지고 청소도 되어있던 친구 집 방안에 들어왔다 나간 물의 흔적이 선명했다. 친구 어머니와 그, 나와 친구가 어색하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와 친구 엄마의 저런 방문이 내 친구에게 어떤 마음이 들게 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더 세심히 생각했더라면 아마 그냥 마음만 가득했다가 생각을 접었겠지. 다만 친구가 어려울 것이고 그럴 때는 일단 돕는 것이 최선이란 마음만 가득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가 나의 요청에 선뜻 나서준 것을 보면, 저런 일을 당했을 때 체면을 살피기보다는 실질적인 도움이 더 절실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아닐까 싶다.
대학입시를 마치고 눈이 아주 많이 온 날 친구 몇과 소위 장거리 여행이란 걸 처음 했다. 가평이든가, 춘천이든가, 팔당이었나? 이제는 어디로 다녀온 것인지도 가물거리는 여행은 꽤 즐거웠다. 나는 입학이 예정돼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전기 시험에서 탈락하고 그 이후에 치른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시기였다. 그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같이 여행 갔던 친구 중 하나가 아주 당황해서 전화를 했다. 기다리던 시험결과를 확인했는데, 합격을 했다고. 그런데, 바로 그 날이 등록금 마감일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자기 어머니께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안 된다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아마 울기도 했을 것이다.
그가 바로 옆에 있었던지, 아니면 찾으러 다녔던지는 확실치 않다. 친구 사정이 그렇다고, 등록금 때문에 학교를 못 갈 상황이라고 도와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마도 내 등록금을 내고 얼마 안 된 시점이었을 터인데 다행히 그에게 등록금을 대신 내줄 돈이 있었다. 친구를 만나 그와 함께 은행에 가서 직접 돈을 입금하고, 친구는 안심을 하고.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친구 어머니가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러 왔던 것 같다.
내가 직접 겪은 저런 일들 말고도 그는 소소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이 사람 저 사람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을 돕곤 했던 것 같다. 자신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나의 ‘엄마’는, 누군가가 요청을 하면,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은 돕고 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자주 까먹어버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