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79

by 포근한 바람


해마다 봄이 되면 쑥향이 코끝을 간지른다. 애쑥을 뜯어다 쑥국을 끓이면 맛날 걸, 저 쑥으로 그가 쑥버무리를 해주었지, 쑥을 잔뜩 뜯어다 다듬어서 쌀과 함께 방앗간에 가져가면 만들어준다며 가져가서 얼려두었다가 두고두고 먹으라고 잔뜩 싸주곤 했던 게 절편이다. 그냥 하얀 절편보다 쑥절편이 더 맛났었는데. 쑥개떡은 또 어떻고? 쫀득쫀득하니 쑥향까지 겹쳐서 꿀도 필요없이 그냥 먹어도 맛있었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엄마는 다른 떡보다 증편이라 부르는 술떡을 좋아했는데, 단맛이 강하면 그저 그렇다고 생각하는데다 떡이라면 단단하면서도 쫀득한 식감 때문에 즐기는 편이라, 떡이라기보다는 식감이 빵에 가까운 증편을 나는 별로라 하는 편이다. 희한하게 딸이 기정떡이라고 부르며 이따금 증편을 찾곤 해서, 이건 또 무슨 취향내림인가 신기해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야생동물 먹이이니 건드리지 말자는 권유들도 많이 하지만 예전에 그는 마을 아짐들과 도토리를 주우러 여기저기 다녔다. 몇 자루는 될 것 같은 도토리를 다라이 가득 채운 물에 담가 쓰고 아린 맛을 우려내고 가루를 낼 수 있을 만큼 불려서 도토리묵을 쑤곤 했다. 초반에 몇 번 실패하고는 곧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도토리묵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약밥도 그가 잘 만든 음식 중 하나다.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어 흑설탕과 간장, 맛을 내는 재료들을 섞고 대추며 밤이며 잣을 듬뿍 섞어서 딱딱 네모지게 모양을 지어 이집 저집 나눠주기 쉽게 잘라서 내게도 주고 동생네도 주곤 했었다. 설탕이 들어가지만 다른 재료들이 적절히 잡아주어 단맛이 강하지 않은 엄마표 약밥은 즐겨 먹는 편이었다.


아부지 생일이면 그가 항상 만들었던 수정과! 그러고 보니 엄마표 수정과만큼 맛있는 음료를 먹어본 적이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 수정과를 만들 사람이 없어져서 먹지 못하게 된 후로 이따금 수정과를 내어놓는 음식점에서 맛을 보다가, 이 맛이 아닌 걸, 한 후에, 그러네, 단 음료를 별로라 하면서도 유일하게 단맛이 강한데도 좋아했던 음료 하나를 더 이상 먹지 않게 되었구나. 그가 돌아가신 후 엄마표만큼 다시 먹고 싶은 수정과를 만나지 못했다.


시골집에 내려가서 한 동안 그는 봄이면 고사리를 꺾느라 바빴다. 지금은 다른 식물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는지 자세히 살펴야 보이지만 집을 짓기 전 그 땅에는 밭으로 봐도 좋을 만큼 고사리가 지천이었다. 꺾어 말린 고사리를 다시 불려서, 혹은 말릴 필요가 없던 그 봄날의 고사리를 듬뿍 넣어 얼큰히 끓인 육개장도 무척 좋아했는데.


음식 만드는 것을 즐겨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서 시도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잘 만들게 되면 이웃은 물론 일가친척하고 때만 되면 나누려고 했던 사람이 그였는데. 시기가 시기여서 서로가 서로에게 닿기 어려운 시절이다 보니, 누구하고든 음식으로 함께 하려 했던 그가 더 자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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