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의 화해라도 화해는 화해지.
이따금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여기저기에 대고 묻곤 한다. 사과 받고 싶은데, 그리고 나서 용서하고 싶은데 상대가 꿈쩍도 않을 때 어째야 하는가고. 답을 해야 하는 위치의 사람들이 이러니 저러니 말을 하더만 내게는 나만의 답이 저것이다.
관계라는 것이, 한쪽의 의지와 마음만으로 연결지어지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여하튼 지금 그 관계가 그리 되기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작용을 한 결과이겠으나, 기억과 기억의 고리 사이에 어딘가에서 이리 틀어지고 저리 꼬여서 지금 그 모양이 되었겠으나, 함께 만들어진 그 관계를 함께 풀 수만은 없는 노릇이어서.
그것이 특히 부모와 자식, 일방적인 힘의 관계 속에 오래 묻혀 있다가, 이제 내 삶을 살리라고 몸을 빼려 해도 빠져나가지지 않을 때 드디어 힘셌던 그 혹은 그들에게 원망이 생겨나는 것이라. 그 원망은, 애초 씨앗을 심고 물을 부어준 이들은 그 혹은 그들이었겠으나 살뜰히 피워낸 것은 이쪽이기 마련이라. 대부분은, 영문도 모르고 탓을 들은 이들은 탓하는 이의 아우성에 꿈쩍도 않곤 한다.
원망하며 사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어서 상대와 상관없이 그 맺힌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상처에 상처를 얹어 더 살아내기 버거운 내가 될 뿐이니 어느 순간에 그저 나를 위해서 거리를 두거나 내 나름의 정리를 하거나 해야 할밖에. 오해와 이해의 시점을 짚어내어 어느 것은 오해였고 어느 것은 이해의 측면이 있고 어느 것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고 정리한 후에, 그래 그러하니 이 정도가 내가 감당하기 적절한 거리와 깊이겠다 싶은 자리에 내 영역을 만들어 다시 시작해볼밖에.
그때는 그럴 줄 몰랐다가 나중에야 그런 기회가 있었다니 다행이다 싶었던 것이, 그와 나의 관계에 대해 정리해서 글을 쓸 일이 있었다. 이래저래 해서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고 나는 지금 그와 이러저러하다, A4 두 장이 채 안 되게 써내려간 그 글을 읽고 함께 얘기나눈 이들 중에, 오래 생각하고 오래 정리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해준 사람이 있었다.
딱, 그렇게, 그와 나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나 혼자 화해하고 나 혼자 이리저리 관계를 매만져서 이제는 그래, 각자 독자적인 한 사람으로서 당신은 그렇고 나는 이렇지, 그 각자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 당신이 어쩌지 못한 삶이 있었고, 나는 나대로의 삶이 있지 했던 과정이 담긴 글을 누군가는 쓰윽 읽고 알아채주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