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만도 못한
뉴스화면 하단에 느릿느릿 지나가는 자막 기사를 보았다.
"ᆢᆢ우리나라 뻐꾸기가 2만km를 날아 아프리카를 왕래하는 것이 밝혀져ᆢᆢYTN"
엥??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다닌다고..? 순간 놀라웠다.
'뻐꾸기가 그런 새 였던가?' 숲속 골짝에 꽁꽁 숨어서 수줍게 "뻐꾹! 뻐~꾹! 뻐꾹!" 하는 그런 새 아니었던가?
새 모습 보다 그 울음소리가 더 익숙하다. 우리나라서는 어느 숲에 가도 들려오는 익숙한 새소리의 주인공이다. 텃새인줄만 알았는데 대륙을 넘나들며 살아가고 있었다.
시내버스를 탄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정거장마다. 교회 간판과 현수막 그리고 십자가들을 마주친다.
너무 흔한게 뻐꾸기를 닮았다. 교회 옆을 지날 때 예배인지, 행사인지 들리는 소리가 꼭 뻐꾸기 울음 같다.
생전에 교회 한번 안 가본 사람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출생 전부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정작 이렇게 느낀다면..? 이건 뭔가 잘못된 듯 싶다. 불편한 진실이다.
알려진 바대로 시리아 등 중동국가에서는 목숨 걸고 출입하는 곳이 교회다. 가깝게는 서울서 30km도 안떨어진 이북 지역이 그렇다.(북한의 경우 노동당에서 통제하는 명목상의 교회가 있다)
시리아의 한 청년이 예수를 영접하면, 가족에게 버림 받는다. 마을을 떠나야 한다. 신변에 위협을 받는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택한다. 신앙 때문에 모든걸 버리고 국경을 넘는다. 교회 출석이 가능한 곳으로 떠나오는 것이다.
레바논에서 근무하며 이러한 사례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했다. 우리가 복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다. 복음이 우리를 선택하고 있음이 분명 했다. 충격적인 기억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 듯, 십자가 아래로 모여든다.
다른 순례자를 만나는 일을 커다란 기쁨으로 여긴다. 좁은 길 걷는 순례의 여정에 고독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모든 '성령충분자'들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성(磁性)에 이끌려 늘어선 철가루처럼 한결 같다. 국적과 인종, 문화와 언어를 초월한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전형이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서로 대립하거나 충돌하는 일이 없다. 든든 할 뿐이다. 힘이 될 뿐이다.
놀라운 점은 이미 저마다가 튼튼한 개(個)교회로 굳건히 서 있다는 사실이다. 갈대로, 나무막대기로 지은 허술한 교회가 아니다. 말씀의 반석 위에 단단히 세워진 짱벽돌 교회다.
나는 상상한다.
이 땅 위에 교회가 영원을 날아 하늘나라를 왕래하는 것이 밝혀져
#신앙 #레바논 #세상의모든기도 #나같은죄인살리신 #정의로운전쟁은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