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과정, 그 똥줄타는 시간에 대하여

by 슈퍼거북맘

제목이 너무 일차원적인가? 어쩔 수 없다.

그 시간은 '똥줄타는' 이라는 원색적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 극도로 피가 마르는 시간이 분명하므로.



아침에 눈 뜨자마자 메일함을 연다.

여기저기서 날아든 광고 메일 뿐, 내가 기다리는 "그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너저분한 광고 메일들을 스팸함에 드래그해 버리면서 짧은 한숨을 내쉰다. 오늘도 소식이 없으려나.


이내 마음을 정리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띵"하고 메일 도착음이 들리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혹시나 하고 얼른 확인해보지만, 역시나 내 지갑을 어떻게든 열어보려는 얄팍한 수의 광고메일이다.


인디드(Indeed) 사이트에 들어가 내가 이력서가 제대로 제출됐는지, 혹시 그 회사로부터 메시지가 온건 없는지 확인한다. 내 프로필도 빠진건 없는지 한번더 꼼꼼히 확인한다. 이력서 제출도, 프로필도 모두 이상 없다. 이상한 건 딱 하나, 그 회사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


인디드 검색창에 내가 원하는 조건과 키워드를 여러가지로 바꿔가면서 다른 회사들을 물색해보지만, 내 조건에 딱 맞는 곳들이 별로 없다. 하, 여기가 딱인데. 여기만 되면 정말 완벽한데!



내가 구직을 시작한건 올 상반기 즈음부터였다. 내가 목표로 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선 슈퍼비전(supervision) 하의 현장실습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슈퍼비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회사에 소속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그래서 집 근처 여러 클리닉에 이력서를 넣어보았지만 한결같이 반응은 없었다. 심지어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 분야는 수요가 많은 직종이라 내 스펙 정도면 충분히 될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력서 단계에서 컷당하다니. 혹시 내가 외국인이라 보지도 않고 그냥 거르나? 면접은 보지도 않았건만 괜히 내 영어실력이 부족해서인가? 혼자 자책을 거듭했다.


한번은 지원한 수많은 회사들 중 한곳에서 인디드를 통해 메시지가 왔다. 그곳은 급하게 사람을 구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던 곳이라, 내심 기대했다. 집과도 가까워서 여기서 일한다면 너무 좋을것 같았다. 급하다니까, 외국인이고 뭐고 어쨌든 난 스펙이 괜찮으니까 채용될거야!


"이미 다른 사람을 구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다시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이없었다. 급하게 구한다더니. 내가 공지 뜨자마자 이력서 냈는데, 그새 다른 사람을 구했다고? 혹시 나는 보지도 않고 일단 배제된거 아냐? 온갖 상념과 머릿속 스토리가 자동 재생되기 시작한다. 와, 미국에는 일자리가 많다던데 왜 나는 이렇게 안 구해지나. 주변 한국 사람들 보면 쉽게쉽게 취업만 잘하던데, 나는 뭐가 부족한거지?


그래도 채용하지 않겠다고 예의상 메시지라도 보내준게 너무 고마웠다. 냉큼 답장했다. "이번엔 안돼서 너무 아쉽지만 다음번에 기회가 있으면 꼭 다시 연락하자"고. 이력서를 냈지만 가타부타 반응도 없던, 심지어 내가 메시지까지 보냈지만 답이 없던 다른 회사들에 비하면 이곳은 최소한 매너는 있지 않은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검색하던 중, 한 회사로부터 인터뷰 제안이 왔다. 오예! 그동안 이력서만 내봤지, 면접을 보는건 처음이라 잔뜩 긴장하고 몹시 준비를 많이 했다. 인터뷰 예상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 유창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달달 외우고 연습했다. 챗GPT와 매일 한시간씩 모의면접을 했다. 그리고 화상으로 이루어진 실제 면접에서 나는 꽤 잘 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


"그들이 원하는 시간대와 내가 가능한 시간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크게 실망한 나는, 왠지 이 이유는 표면상 이유이고 왠지 다른 이유가 있을것만 같았다. 나름 잘 대답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영어가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미국 회사들은 정말 외국인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건가? 내가 기대하는 연봉을 너무 많이 불렀나?


나는 점점 지쳐갔다. 수많은 이력서들을 냈지만 연락온 곳은 고작 두군데, 그중 단 한곳만 인터뷰. 그리고 탈락.


막막했다. 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현실의 차가운 벽 앞에서 나는 움츠러들었다. 이도저도 안되면 그냥 포기해야하나. 그렇게 한동안 구직 활동을 쉬었다. 인디드에도 잠시 발길을 끊고 자체 영어 몰입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날, 인디드에서 프로필을 변경하라는 메일이 하나 왔다. 아무 생각없이 클릭한 후 내가 원하는 조건을 입력했는데, 그 새로 업데이트된 내 프로필이 구인섹션에 홍보가 되었던 모양이다.


따르릉-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반신반의하며 전화를 받으니 활기찬 목소리의 여자가 내 이름을 부르는게 아닌가!


"너 슈퍼비전 프로그램 찾고있지? 우리 회사에서 그 프로그램 지원해줄 수 있는데 관심있어?"


"오마이갓! 진짜??"


"응, 내가 인사 담당자한테 연락해서 너 인터뷰 날짜 잡아줄테니까 내일쯤 연락갈거야."


그 회사는 몇개월전 내가 인터뷰했지만 시간대가 맞지 않아 탈락했던 바로 그 회사였다. 인연이라면 돌고돌아 다시 만나는 법. 그렇게 나는 지금의 회사에 한번 떨어지고 한번 더 천운의 기회로 인연이 맺어졌다.


두번째 인터뷰 했을때는 그리 떨리지도 않았다. 옛 친구와 조우하듯 반갑고 자연스럽게 대화했고, 바로 다음날 클리닉 투어 기회가 주어졌다. 실제 내가 일할 곳을 둘러본 후, 나를 최종 채용할지 결정하겠다는 뜻이었다.


클리닉 투어 당일에는 너무 긴장해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다시한번 예상 질문들을 연습했다. 커피를 두잔이나 마신 채로 들어가서 클리닉 대표와 인사했다.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내가 한 마지막 질문은, "누가 나를 채용할지 결정하느냐?"였다.


이 회사는 미국 전역에 지점을 가진 꽤 규모있는 회사라 채용 담당 인력과 클리닉(지역별 지점) 담당자가 다르기 때문에, 오늘 투어 후 누가 최종 결정을 할것인가가 내 화두였다. 어제 인터뷰했던 인사 담당자인지, 아니면 오늘 직접 대면한 클리닉 대표인지. 그녀 말로는 collaboration 한다고 했지만, 나는 왠지 클리닉 대표의 의견이 최종당락을 좌우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그녀는 혹시 인사 담당자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본인한테 연락하라며 친히 명함을 건네주었다. 오, 이건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그녀가 날 좋게 봤다는 뜻 아닌가? 그래도 혹시 몰라, 끝날때까진 끝난게 아니지. 압도적인 긴장감과 약간의 기대, 그리고 내가 잘한건지 아닌지 혼란스러운 마음이 뒤섞인채로, 나는 그날 밤 집에 가서 기절하듯 쓰러져 잠들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인사 담당자에게도, 클리닉 대표에게도 연락이 없다.

하 뭐지? 분명 좋은 시그널이었는데. 이번에도 떨어진건가?


연애시절 잠수탄 남친의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때보다 백배는 더, '똥줄이 타는' 하루하루였다.

하루에도 수십번 메일함을 확인하고, 기대와 실망, 희망과 절망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적극성을 발휘해보기로 했다. 클리닉 대표의 명함에 적힌 메일로, 그리고 인사담당자까지 참조에 넣어 이메일을 보냈다.


"혹시 다음 단계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수있니?"


그리고 다음날, 나는 결국 인사담당자 애비게일에게 합격 전화를 받았다.

내가 원하던 바로 그 회사,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지는 그곳.


나는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job을 얻었다.


구직은, 연애보다 어렵다.

그리고 더 똥줄탄다.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