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회사 운영팀에서 컨설턴트로 직무전환을 생각하게 된 계기
정글숲같았던 입사 3개월을 지날 무렵, 업무인수인계를 받았던 외주센터와의 계약이 종료되어 완전한 홀로서기를 했어야 했다.
23살 입사 3개월차의 병아리였던 나는 팀 내 유일하게 업무인계 히스토리를 아는 사람으로, 앞으로 입사할 직원들의 업무교육을 맡게 되었다. 고작 1달만에 지난 6년간의 업무를 인계받다보니, 업무진행이 순조로울 리가 없었다.
업무요청을 받긴 했지만, 처리하는 방법은 나도, 팀원들도, 팀장도 몰랐다. 마구 부딪히고 사고를 치면서 몸소 배웠다. 당시 담당업무의 특성 상, 고객들과 유선 상으로 대화할 일이 많았는데, 때때로 폭언과 인신공격성 말들로 분풀이를 하는 고객들이 있었다. 나름 서비스산업 전공, 고객응대 알바경력 4년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내 일'로 다가오니 사뭇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그런 고객의 반응도 어찌보면 이해는 된다. 나도 내가 하는 업무를 모르는데 고객은 당연 내게서 전문성을 느낄 턱이 없었다.
진상도 진상이지만, 그보다 더한 허들은 '내 일'에 대한 효용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주변에 취업한 친구들이 한명도 없던 23살 그 시절에는, 마냥 직장인이 되면 머리쓰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멋있는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별 게 없었다. 쌩 신입을 데려와서 하루를 교육시켜도 할 수 있을 만한, 단순반복작업이 주를 이뤘고, 내가 업무를 배울 수 있는 팀원이 없다보니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으레 큰 기업에 가면, 신입사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배우고, 적응하고, 몇년 뒤 진급하여 한단계 더 복잡한 일을 배우고, 혹은 부사수를 가르치는 등 적어도 5년 이상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정말 단 하루의 미래도 짐작할 수 없었다. 내가 이 업무를 하면서 어떻게 성장해야할지, 어떤 걸 목표로 가져야 할지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일을 하면서 작은 개선에 일희일비하고, 당연한 일의 성과를 부풀리고, 다른 팀원들보다 더 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의미없는 일에 의미부여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그저 버릇없게도 '내가 팀 내에서 제일 유능한 인재고, 여기서 더 배울 수 있는 건 없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호기롭게 대표님께 1:1을 요청드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효용을 못느끼겠으니 다른 일을 시켜주세요'라고 했다. 당시 대표님께서는 수 분간 고민하시더니,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다. 나는 너에게, 너가 지금 winning team의 winning person인지 묻고싶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한문장에, 나는 바로 납득하고, 한결 가볍게 자리로 돌아갔다. 우리 팀은 winning team도 아니었고, 나 또한 winning person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는 winning person이 되는 것을 단기적인 목표로 삼았다. 팀원들보다 내가 더 많은 것을 알아야했고, 회사 내 모든 정보와 소식에 가장 빠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 다행히 내게는 '팀 내 가장 먼저 입사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빌미로 옳든 옳지 않든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를 쌓게 되었다. 이를 발판으로, 좀 더 넓은 범위에서의 업무를 맡고, 입사 1~2년차로서 경험하기 힘든 업무까지로 확장하게 되었다. 여전히 하루 뒤의 미래를 알 수 없는 건 동일했지만, winning team과 winning person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업무 범위를 넓혀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어떤 일에 강한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다른 팀원분들에 비해 디테일에는 무척 약했고, 큰그림과 프로세스 전체 흐름을 보는 역량엔 강했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내 역할과 직무'가 정해져있는 회사에서는 사업기획이나 전략이 아닌 이상 큰 그림을 볼 일이 잘 없다는 것이다. 맡은 업무 내에서 내 기능만 잘 해내면 되는 일들이 주를 이루는 기업에선, 내 강점을 잘 쓸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렇다고 전략팀을 생각하기에는, 내 경력과 큰 상관관계가 없었으며, 날고기는 사람들의 경쟁이 너무 치열했다. 흔한 기업의 ERP시스템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경영지원시스템을 다뤘고, 비전략+경영지원시스템+큰그림 등등 나를 이루는 키워드들을 생각해봤을 때, 내겐 오퍼레이션 컨설턴트가 딱 맞았다. 그렇게 나는, 컨설턴트로의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고, 무려 1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