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내 생에 가장 길었던 '23분'

by 티쳐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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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4일 아침

작은 병실 침대에 아내가 누워있다. 한눈에 봐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그녀의 모습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기대감이 느껴진다.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 옆 의자에는 초췌한 모습의 내가 앉아있다. 연신 오른손 손톱을 물어뜯으며 어찌할지 모르고 있던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한마디 한다.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나의 비장한 목소리에 역시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간호사가 다가왔다.


“이제 들어가겠습니다. 마취부터 하러 갈게요.”


시계를 보니 어느새 9시 15분, 약속한 수술시간이 다가왔다. 이제는 마주 잡고 있던 손을 잠시 놔줘야 했다. 간호사가 아내를 데리고 수술실로 들어간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동시에 무력감에 빠진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평소 믿지도 않던 신들을 찾으며 기도하는 일 밖에 없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내 눈에 가족분만실이 보인다.


‘우리도 만약 제왕절개가 아닌 자연분만을 했다면 저기에 있었겠지.’


나와 아내는 자연분만을 원했으나 아이가 배속에서 위치를 잘못 잡았다. 그런 걸 병원에서는 일명 ‘역아’라고 한단다. 우리 부부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제왕절개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저 수술이 잘 되기만을 기도할 뿐. 기도를 하며 두 손을 맞잡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순간 아내의 진통 소리가 아닐까 생각했으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내 일리 없지. 아내는 지금쯤 마취가 되고 있을 테니.’


아까 옆에 누워있던 산모인가 보다. 그 소리에 괜히 내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한다.


‘아내는 마취했으니 당장은 아프지 않겠지? 제발 둘 다 건강하게만 나와라.’


수술을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최근 수술로 잘못된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금 전 수술동의서에 서명하던 것이 자꾸 떠오른다. 애써 그런 생각을 지우려 고개를 연신 가로저으며 앞에 있는 수술실에 집중한다.


9시 25분, 아내를 담당하시는 5과 선생님께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잘될 거라고 말씀해주시고 들어가는 선생님께 진심으로 우러나는 부탁 인사를 드렸다. 잠시 후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건 우리 서현이 울음소리일까? 아까 아이를 낳는 데에는 얼마 안 걸린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기대도 잠시, 정신을 집중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옆에 신생아실에서 아이가 우는 거였다. 마치 내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우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미소가 절로 떠오르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서현이는 어떤 모습일까?’


수술실에 들어가는 오늘까지 아이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궁금해 입체 초음파를 세 번이나 시도했건만, 갈 때마다 우리에게 보여주길 허락한 모습은 손이나 다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었던 우리 서현이. 드디어 처음으로 그 모습을 보게 되는 오늘.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 아내의 보호자로서 수술동의서를 작성한다는 것, 그리고 조금 이따 제출하려고 준비한 내 가방 속 출생신고서까지.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서현이가 함께 가족으로서 출발한다는 것이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서현아! 이제 진짜 곧 만난다! 우리 만나서 앞으로 행복하게 지내자. 그리고 아빠가 오늘 경험한 이 마음을 너도 언젠가 이해할 날이 오겠지? 사랑한다. 우리 서현이. 네가 우리에게 온 순간부터 항상 너를 사랑했단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든 너를 지켜줄게. 사랑해.’


휴대폰을 꺼내 순간의 일들과 감정을 기록하고 있던 그 순간, 9시 35분! 갑자기 아내가 들어간 수술실이 분주해진다. 그리고 9시 38분. 간호사가 끌고 온 카트에 한 여자 아이가 누워서 울고 있다. 마치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벨라와 에드워드의 딸, ‘르네즈미’에게 ‘제이콥’이 각인된 것처럼 나도 서현이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간호사가 건네준 가위를 받아 탯줄을 정리한다. 신경이 없어 아프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고 잘 정리해주라는 간호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내 손의 떨림은 멈추지 않는다.


"서현아, 미안~. 아빠가 아프게 해서 미안~."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주저리 대며 겨우 탯줄을 정리했다.


2016년 3월 14일 9시 38분, 이렇게 내 생에 가장 길었던 ‘23분’을 통해 딸 서현이가 우리 가족이 되었다.


- 매주 수요일, 교육자인 우리 부부가 4년 동안 기록해 온 육아이야기를 펼쳐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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