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2학기가 되었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학습’이라는 걸 시작했다.
학원 강사 출신인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학원을 그다지 믿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직접 가르치기로 했다.
칠판과 물백묵, 칠판지우개를 준비하고 교재를 고른 뒤, 수업 시간도 정확히 정했다.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 5시부터 6시 반까지.
그렇게 우리는 1:1 수학 수업을 시작했다.
그 수업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이어졌고, 꼬박 6년이 흘렀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힘들었던 순간도, 웃음이 터졌던 날도, 좌절과 안도의 숨도 모두 그 안에 있다.
고3이 되자 아들은 혼자서 수능 과목들을 정리해 나갔다.
스터디카페를 이용하기도 했고, 관리 감독이 있는 독학학원 자습실을 다니기도 했다.
수시 1차 서류 심사,
2차 구술·논술 고사와 면접까지 모두 마친 뒤
최종 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아들은,
우레와 같은 고함을 지르며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때 아들이 내게 한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엄마가 제일 고생 많으셨어요."
Istp인 아들에겐 이게 최고의 존중이란걸 나는 안다.
이런 정도의말 아무에게나 안한다.
6년간의 노력, 아니 사실은 12년간의 시간이 결실을 맺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는
세상 그 어떤 행복보다도 더 큰 행복 그 자체였다.
그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
1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날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아이가 태어난 지 20년이 흘렀지만,
갓 아이를 낳고 처음 눈을 마주쳤던 순간만큼이나
내 인생에서 잊히지 않을 장면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