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아빠들은 대체로 학력고사 세대일 것이다. 그때는 모든 대학이 동일한 기준으로 선발했기 때문에 오로지 학력고사 성적에 따라 대학을 정하면 됐다. 또한 과학고와 외고가 있기는 했지만 입시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숫자가 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사람이 같은 내용을 배우고 같은 시험을 봐서 대학에 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의 선발 방법도 고등학교의 유형도 정말 다양해졌다. 현재 입시 제도에서는 학력고사를 대신한 대학 수학 능력 평가(수능) 성적뿐만 아니라 내신성적, 비교과 활동 등으로 평가 항목이 늘어났다. 또한 고등학교도 영재고, 과학고, 외고, 자사고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각 유형에 따라 수업 및 학내 활동에 차이가 발생하고 입시 평가 항목 별로 유불리가 생겨났다. 이에 대학은 원하는 학생을 뽑기 위해 정원을 여러 개의 칸막이로 나누고, 평가항목을 조합하여 칸막이별로 서로 다른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정리하면 과거에는 모든 학생이 학력고사 성적 순으로 일렬로 서서 대학 서열에 따라 차례차례 입학했으나, 지금은 각 대학마다 다수의 칸막이가 있고 그 안에 있는 학생끼리 경쟁을 한다. 이제는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꼭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고,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가 무관심하게 있어서는 안되고 자녀의 상황에 어떤 칸막이가 유리한지, 또한 경쟁자는 누구인지 파악하고 전략을 함께 세워야 한다.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쓰겠지만 우선 칸막이에 대해 대략적인 이해를 하기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현재 대학입시는 크게 수시와 정시로 나뉜다. 정시는 수능 성적이 절대적인 선발기준이다. 그리고, 수시는 다시 학생부 교과, 학생부종합, 논술, 특기자 등 네 가지 전형으로 나뉜다. 우선 '학생부 교과전형'은 내신 성적 중심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교과 성적이 우수한 학생 위주로 선발한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학생부에 기록된 내신 성적 외에 동아리, 독서, 봉사 등 비교과 활동을 포함하여 평가한다. 여기에 자기소개서, 추천서, 면접 등을 더해 학생을 최종 선발한다. '논술전형'은 대학 자체적으로 출제한 논술 문제의 성적을 중심으로 선발하며 학생부를 거의 반영하지 않는다. '특기자전형'은 특정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으로 제출된 증빙자료와 학생부를 종합하여 평가한다. 네 가지 전형 외 수시에는 농어촌, 기초 생활 수급자 등 사회적 배려 계층을 위한 정원 외 전형이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 입시의 유형일뿐 실제 대학의 입시요강을 보면 학교마다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고 선정 기준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수시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2019학년도는 76.2%에 이른다. 학생부위주(교과, 종합)는 총 모집인원의 65.7%, 수시의 86.2%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학생부 교과는 물론 학생부종합 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는 내신 성적이다.
위의 표에서 보면 학생부교과전형은 전체 대학 기준으로는 과반수에 육박하는 41.4%(14만4340명)를 학생부교과전형으로 선발하지만, 서울 소재 주요 15개 대학(△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홍익대) 기준으로는 선발 비중이 단 5.4%(2575명)에 그친다. 최상위권 학생이 지원하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좁혀보면 이러한 경향은 더 분명히 드러난다. 서울대와 연세대는 교과 전형이 없으며, 고려대가 400명 선발하는데 1단계에서 내신성적으로 3배수 선발 후 2단계에서 면접으로 뽑는다.
왜 상위권 대학은 교과보다는 학생부 종합을 선호하는가? 내신은 어느 학교나 상대평가를 통해 1등급에서 9등급까지 부여한다. 우수한 학생이 모여 있는 특목고, 자사고 등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국 학생부교과 전형으로는 이들 학교의 우수한 학생을 뽑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학은 상대적으로 재량권이 많은 학생부 종합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지방 소재 거점 국립대학들은 학생부교과전형을 선호한다. 경상권의 경북대와 부산대는 올해 각각 1119명과 1171명, 즉 1000명이 넘는 인원을 학생부교과전형으로 선발한다. 전라권인 전남대와 전북대의 학생부교과전형 선발인원도 각각 1959명, 1833명으로 거의 2000여 명에 육박한다. 이는 지방 거점 국립대학’이 교과 성적이 우수한 ‘지역 일반고’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와 같이 각 대학은 학생 유형을 세분화하여 주 공략층을 설정하고 맞춤형 선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유형에 속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의 선발 전략과 일치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입시 전략을 수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입시제도와 대학의 전략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봤으니 자녀가 처한 환경이 어느 칸막이에 유리한지 살펴보자. 고등학교 유형은 일반고, 특목고(영재고, 과학고, 외고), 자율고(공립형, 사립형), 특성화고(농생명, 공업, 정보 등)로 나뉜다. 일단 특성화고는 대학 진학보다는 직업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논의에서 제외한다.
특목고의 경우 특정한 분야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커리큘럼 자체가 일반고하고는 다르고 다양한 교내 활동을 한다. 그래서 특목고 학생은 수능 위주의 정시에서는 일반고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 대신 다양한 교내 활동 실적을 활용하여 수시의 학생부 종합과 특기자 전형에 집중한다. 민족사관학교, 하나고 등 고유의 교육 이념과 커리큘럼을 가진 자사고 역시 특목고와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점은 특목고, 자사고 학생들은 다른 대안 없이 일반고 최상위 학생들과 함께 SKY대학 학생부 종합이라는 칸막이 안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 진학만 놓고 본다면 이들 학교가 결코 유리하지 않다.
다음은 강남, 목동 등 소위 교육특구의 일반고를 다니는 학생들이다. 교육특구 역시 우수한 학생이 모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내신 성적 받기가 힘들고 특목고같이 학교에서 학생부를 열심히 챙겨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정시에 집중한다. 하지만 정시라는 칸막이 역시 쉽지 않다. 정시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왔고 무엇보다 수능에서 절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재수생들과 경쟁해야 한다. 교육특구에 재수하는 학생이 많은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외의 일반고는 학교나 지역 특성보다는 개인의 차이에 의해 방향이 결정된다. 내신 성적이 모의고사 보다 좋으면 학생부 전형에 반대의 경우에 정시에 집중한다. 어째 보면 이들 학교야말로 학생의 특성에 맞춰 전형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얼마 전 중학교 3학년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2년 입시제도 개편을 위한 국민 의견수렴 결과가 나왔다. 정시 비중을 45%로 확대하는 방안과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안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두 안의 지지율이 오차 범위 안에 있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났다. 교육부가 8월 말에 현재와 큰 변동 없이 정시 비중을 조금 높이는 수준에서 대입제도 개편안을 발표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다. 결국 앞서 설명한 칸막이 시스템이 계속되는 것이다.
지금의 입시제도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언론에서 얘기하듯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사교육이 지배하는 세상만도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과거에는 한 가지 길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소신을 가지고 내 아이에게 맞는 길을 선택해 걸어가면 된다. 사교육이 싫고 자연에서 맘껏 뛰어놀게 하고 싶으면 농어촌 지역에 살면서 사회적 배려나 지역 균형 전형을 통해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가 칸막이별 장단점을 이해하고 어떤 칸막이를 선택할지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한 길을 흔들림 없이 엄마와 아이가 걸어갈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고, 함께 입시 전략을 고민하면서 준비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