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를 보는 프레임-②선택의 역설

by 뭉게구름



퇴근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아내가 내일 손님 초대한다고 난생처음 듣는 소스를 사다 달라고 한다. A 가게에 갔더니 10가지 종류가 있고, B 가게에는 3가지가 있었다. 어느 가게에서 사는 것이 올바르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A 가게에서는 10가지 상품을 가격에서 성분까지 비교해 봐고 잘 모르겠고 아내한테 한소리 듣지 않을까 걱정만 커져간다. B 가게의 경우 잘 나가는 상품만 갖다 놨을 것 같고, 안되면 3가지 밖에 없었다는 핑계 거리라도 있어 더 안심하고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이 너무 많은 선택권이 주어질 경우 오히려 판단력이 흐려져 소수의 선택권을 가졌을 때보다 더 안 좋은 결정을 하거나 포기하게 되고,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불행감을 경험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 <선택의 역설>이라고 한다. 미국 스위스모어대학(Swartmore College)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그의 저서 《선택의 역설》을 통해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과 선택 과정에서의 시간 소요가 증가하고, 수많은 선택 가능성이 심리적 기회비용을 과장하여 선택에 대한 불만족을 야기하고 후회를 불러오기 쉽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 수준의 선택권 증가는 행복을 가져올 수 있지만, 너무 많은 선택권은 오히려 심리적인 긴장 및 스트레스, 후회 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현재 입시제도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선택의 역설> 상황이다. 과거에는 전기와 후기 최대 2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지금은 수시 6장, 정시 3장의 원서를 쓸 수 있다. 기회가 많아진 만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평소 안전권이라 생각하는 대학은 물론 혹시 모르니 상향 지원도 해야 하고, 재수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면 최악의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전형도 다양하니 어느 대학에 무슨 전형으로 지원할지도 정해야 한다. 이전 글(대학입시를 보는 프레임-①칸막이)에서 설명했듯이 같은 대학과 학과에서도 전형별로 지원하는 그룹이 다르니 고려해야 하는 대학의 폭이 생각보다 상당히 넓다.

또한, 9월에 수시를 지원할 때 아직 시험도 보지 않은 수능 성적도 예상해서 선택해야 한다. 현재 제도에서는 수시에 합격하면 무조건 정시에 지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시에 자신이 없으면 수능 전에 면접을 보는 전형에 지원해도 되지만, 조금이라도 정시의 가능성을 본다면 수능 이후에 2단계 과정을 하는 전형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수능이 끝나면 바로 대학들이 2단계 전형을 실시하기 때문에 수능 가채점 결과를 가지고 2단계 전형을 포기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아직 내 수능 점수가 어느 정도 위치인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택을 하라니 정말 어이없고 웃기는 일이다.

수시가 끝나고 정시로 넘어가도 고난의 선택 여정은 계속된다. 수능 성적표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점수가 없다. 문제당 배점을 곱해 합산한 점수(원점수)가 없는 것이다. 대신 과목별 난이도를 고려한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급이 나와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마다 점수 환산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느 대학은 표준점수만 반영하고 다른 곳은 백분위까지 반영하기도 하고 탐구 영역의 경우 자체적인 환산 기준을 사용하는 대학도 있다. 또한 과목별 반영 비중도 제각각이고 특정 영역에 가중치를 주는 대학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아이의 과목별 점수를 가지고 대학별로 유불리를 다 따져서 선택해야 한다. 막판 눈치작전은 당연히 해야 하고...

이 정도면 <선택의 역설>이 아니고 무엇이랴... 대부분의 부모들이 원서 쓸 때 뭐가 뭔지 혼란스럽고 올바른 선택을 했는지 불안감에 떤다. 나 역시 두 아이를 대학 보내면서 그랬고, 학생 선택권 확대라는 미명 하에 감당하지도 못할 수많은 선택을 강요하는 현 입시제도에 대해 분통이 터지고 욕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학지도를 하려면 모든 대학의 전형 방법을 분석해야 하는데 이건 불가능이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학생에게 맡기고 원론적인 얘기 밖에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선택의 역설> 상황 때문에 엄마들은 불안한 마음에 10분당 10만원씩 하는 입시 컨설팅을 찾고 점을 보러 다닌다.

어찌 됐든 분명한 것은 수시 6장, 정시 3장... 이 9장의 카드를 어떻게 조합시키냐에 따라 내 아이의 대학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우리 애보다 성적이 낮았던 친구가 선택을 잘해서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힘들기는 하지만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느냐에 따라 <선택의 역설> 상황을 기회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마한테만 맡겨두지 말고 대학별 입학설명회는 꼭 챙기고 가끔 학원에서 하는 설명회도 가보는 것이 좋다. 뭔가 한 가지씩은 건질 것이다. 이런 노력이 쌓일수록 올바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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