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를 보는 프레임-③깜깜이

by 뭉게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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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고사 시절에는 시험이 끝나면 바로 다음날 대학별 예상 커트라인이 신문에 실렸다. 그러나 지금은 수능 성적이 발표돼도 옛날과 같은 배치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첫째 아들 때의 경험이다. 수능이 끝난 주말 모 입시 분석기관이 하는 설명회에 갔었다. 수천 명의 부모들이 모였고, 1시간 넘게 줄을 선 끝에 설명회 장은 들어가지도 못하고 겨우 배치표만 받아서 나왔다. 나중에 보니 배치표는 순 엉터리였다. 하지만 앞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수시 2차 전형을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조금이라도 정보가 있는 곳을 뛰어다녀야 했다.

아무리 제도가 복잡해도 관련 정보라도 많으면 어떻게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입시는 정말 <깜깜이>이다. 정확한 선발 기준과 커트라인은 오직 각 대학만이 안다. 공식적으로 외부에 공개되는 것은 5월에 열리는 대학별 입시 설명회에서 발표되는 전형별 지원자 내신 평균 정도이다. 내신 평균은 참고만 될 뿐 지원할 대학을 선택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평균이 아니라 커트라인이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 홈페이지에 게재하지 않는다.

전형 중에는 '깜깜이·금수저 전형'이라는 오명이 붙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가장 어떤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는지 불투명해 예측하기가 어렵다. 오죽하면 '학종은 붙은 학생도 놀라고 떨어진 학생도 놀란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겠는가. 정시라고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진학사, 유웨이 등 3~4개 정시 합격 예측을 해 주는 기관이 있다. 4~5만 원 정도 내고 유료회원으로 가입한 후 수능과 내신 성적을 입력하면 합격 가능성을 예측해 준다. 그런데 각 기관마다 결과가 다르다. 어떤 곳은 불합격 또 다른 곳은 추가합격으로 나온다. 정말 선택하기 어렵고 믿을 수 있는지 의심만 든다. 결국 이들 기관도 정확한 정보는 없고 학생이 입력한 성적과 지원 현황을 가지고 합격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깜깜이> 상황은 지역·소득 간 정보격차를 만들고, 이 격차에 의해 입시제도에 대한 불신과 불평등이 생겨난다. 대치동에서 서울대 많이 보내기로 유명한 학원의 설명회에 간 적이 있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별로 서울대에 들어간 학생의 숫자를 나열한 표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강남과 목동에 있는 학교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0~1명의 학생이 서울대에 들어갑니다. 지역균형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 학교들에 무슨 데이터가 있겠습니까? 저희는 서울대에 보내 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여 학교에서 안된다고 한 학생도 가능성을 평가하여 과감하게 지원하게 합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좋은 대학’에 간 학생들의 데이터는 그 학교의 정보 자산이다. 어떤 활동, 어떤 기록에 대학이 반응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많을수록 다음 해 입시에 전략적 대응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깜깜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교사가 열정과 의지가 있어도 극복할 수 없는 데이터의 벽이 있다.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데이터가 없는 현실에서 소신 지원은 엄두도 못 내고 안전 지원을 권유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좀 더 높은 대학을 지원하고 싶었는데, 학교에서 부정적이어서 원서를 못 썼다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시간이 갈수록 정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학원이나 입시 컨설팅 업체는 정보가 돈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모은다. 이 정보를 활용하여 학생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유명해지면 더 많은 학생들로부터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정보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깜깜이> 상황이 앞으로 좋아질 수 있을까? 나는 절대로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은 대학이다. 그런데 대학은 절대로 이 정보를 바깥으로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공개하는 순간 대학 서열화가 심화되고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암흑 같은 입시 환경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정보 조각을 모아 퍼즐의 얼개라도 만들어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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