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 가기 위한 3대 조건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우스갯소리이다. 대치동에서 10년을 살면서 연년생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낸 나로서는 단순한 우스갯소리만으로 들리지 않는다. 소위 대전동 아빠(대치동에 전세 얻는 아빠)라도 하기 위해 조금 괜찮은 아파트를 얻으려면 10억 원이 넘게 필요하다. 또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학원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여, 고3 때는 웬만한 고액 연봉자가 아니라면 월급을 다 쏟아부어도 부족할 지경에 이른다. 할아버지의 재력에 대한 생각이 절실해진다.
우리 집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4, 5학년일 때 강남으로 이사 왔다. 집사람은 학부모 모임에 열심히 나가 어느 학원이 좋은지 물어보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웃기만 하고 안 가르쳐 주더라고 한탄을 했다. 1년쯤 지나 친해진 한 엄마가 안쓰러웠던지 한마디 해줬다. "여기서 그런 건 물어보는 것 아니에요. 다 시간과 돈 투자해서 얻은 정보인데 그냥 얘기해주겠어요." 그렇다. 부단히 발품 팔아 학원 설명회 다니고 엄마들 네트워크 관리에 열성을 다해 얻어 낸 정보인데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남한테 쉽게 가르쳐 줄 턱이 없다. 기브 앤 테이크가 안 되면 엄마들 네트워크에 낄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엄마의 정보력은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자 아빠들이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지금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아빠들은 대게 학력고사 세대일 것이다. 그때는 학력고사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놀다가 고3 때 정신 차려 공부에 매진하면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가능했다. 또한 아빠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정부에서 과외를 금지시켰던 시기이다. 나는 과외 한번 안 받고 알아서 공부해서 대학에 갔는데, 주말도 없이 밤늦게까지 학원 다녀오는 아이를 보면 안쓰럽고 뭔 짓을 하는가 싶다. 그래서 엄마한테 한 마디 하면 금세 싸움으로 번진다. 내가 아는 사람은 아이가 중2 때까지 학원 문제로 와이프랑 매일 싸우다가, 다 포기하고 밤에 학원에서 데려오는 것만 했더니 가정이 아주 화목해졌다고 한다. 아빠의 무관심이 정말 필요한가 보다.
자녀 교육 문제에 있어 아빠란 존재는 뭘까? 엄마한테 모든 것을 맡기고 무관심한 아빠로 지내도 될까? 내 아이의 미래가 걸린 일인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코 '아빠의 무관심'이 자녀 교육 문제에 있어 방임하는 '무관심한 아빠'를 의미하지 않는다. '아빠의 무관심'은 지금의 입시제도와 교육 환경이 내가 학교 다닐 때와는 천양지차로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엄마가 발품 팔아 얻은 정보와 판단에 귀 기울이고 존중해 주라는 뜻이다.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엄마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동반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정보로 무장한 엄마를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 숲속에서는 숲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엄마가 정보의 늪에 빠져 불안과 결정 장애에 허우적거릴 때, 한 발 떨어져 객관적 시각으로 올바른 길을 찾아주고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내 경험을 뒤돌아보면 학원 시스템에 처음 입문할 때부터 대학 보낼 때까지 몇 번의 중요한 의사결정 단계를 거친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학원을 몇 개나 보낼 것인가 같은 세세한 문제는 엄마한테 맡겨두고 중요한 지점에 집중하는 것이 회사 일도 바쁜 아빠들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인 것이다.
아빠의 무관심은 방임이 아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세세한 부분은 엄마의 판단을 존중해주면서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