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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May 05. 2020

대한민국 헌법의 시작

피스메이커를 꿈꿨던 대한민국의 시작

1. 법대 첫 수업, 첫 시간

학부 4년, 로스쿨 3년, 그리고 또다시 로스쿨을 거치며 거의 10년째 법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도 인생 처음으로 법학 수업을 들으러 가던 날이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스무 살 청춘의 시간이 있었듯 나에게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스무 살이 된 3월의 봄이 있었다.


법대 입학 후 처음으로 들었던 법학 수업은 바로 헌법 수업이었다.  '헌법 1'이라는 굉장히 법대스러운 과목의 첫 수업 준비물은 단 한 가지로 '헌법이 적혀있는 법전'이었는데, 어디를 읽어오라는 이야기가 없어서 어디를 공부해가야 할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한참을 고민 끝에 헌법전을 펼쳐 가장 첫 조문인 헌법 제1조를 읽어가기로 결정했다.  1000만 영화 변호인을 통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바로 송강호 배우의 명대사였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당연히 헌법 제1조를 배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첫 시간, 교수님은 헌법 제1조를 다루지 않으셨다.  교수님은 헌법 제1조 대신 법전 가장 첫 페이지에 있는 '헌법전문'을 펴라고 말씀하셨다.  헌법전문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는 법전 가장 첫 페이지를 폈다.  헌법 본문(제1조로 시작하는)보다도 앞에 위치한 법전 가장 첫 페이지에는 중간에 마침표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짧은 문장이 있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교수님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으로 시작하는 헌법의 맨 처음에 위치한 이 한 문장을 단어 하나하나에 혼을 실어 읽어주심으로써 수업을 시작하셨다.  그렇게 나의 인생 법학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헌법전문을 읽던 이때 까지만 해도, 내가 법학을 10년 동안 공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헌법전문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상태로 교수님이 읽어주시는 헌법전문을 들으면서 나의 10년간의 법학 공부는 시작됐다.


2. 대한민국 헌법의 첫 시작

나에게 첫 번째 법학 수업이 있었듯, 헌법도 첫 시작이 있었다.  앞의 헌법전문은 대한민국 헌법 제10호 헌법의 전문으로 첫 헌법의 제정 이후 9번의 개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9번의 개정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제1호 헌법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시작을 알린 제헌헌법이다.  1948년 7월 17일, 국회는 제헌헌법을 공포했고, 우리 헌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제헌헌법을 보면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때 어떠한 정체성과 방향을 가지고 시작했는지 엿볼 수 있다.  쉽게 말해, 우리 선배들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책 한 권을 봐도 저자는 책 본문을 쓴 뒤, 한참의 시간을 들여 머리말을 작성하는데 제헌헌법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헌법전문을 적는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까?


대한민국헌법 [시행 1948. 7. 17.] [헌법 제1호, 1948. 7. 17., 제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3. 우리 선배들이 꿈꾸었던 대한민국: 세계를 화평케 하는 국가(Peace Maker)

제헌헌법의 헌법전문을 보면 앞에서 봤던 제10호 헌법과 다른 부분들도 많이 있지만, 유독 동일한 문장이 눈에 띈다.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한다고 써져있는 부분 말이다.


분명 이 헌법은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이 23불에 지나지 않는 세계 최빈국이었던 1948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우리 선배들은 그 헌법의 가장 처음에 있는 전문에서 '국제평화'를 외치고 있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게 믿어지시는가?  불과 몇년 전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어 눈 앞에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민족은 남북으로 갈라져 분단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암울한 시기에 우리 선배들은 세계를 화평케 하여 국제평화를 유지시키는 Peace Maker로서의 대한민국을 꿈꿨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모하고도 큰 꿈이란 말인가!


3. 헌법전문을 보며 꿈을 꾸다: 다시 쓰는 자기소개서

이러한 선배들의 큰 꿈을 배우면서, 그리고 그 꿈이 담겨있는 헌법을 보면서 나 역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떻게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며 꿈꾸기 시작했다.  법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고, 세계를 화평케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했다.  "배워서 남 주자"를 외치던 우리 학교의 구호처럼 먼저 배워야 했다.  어설프고 대충 배워서는 결코 남에게 줄 수 없었다.


각 시대에는 그 시대마다의 시대적 소명이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그 시대적 소명들은 조국의 독립, 헌법의 제정, 경제 발전, 민주화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벅찬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시대적 소명의 부름을 받아 열심히 노력했던 대한국민들과, 그것을 제도화하고 사회 질서를 세워 사회를 안정시킴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했던 법조인들이 있었다.  분단으로 인해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어렸을 적 금강산에 다녀오며 분단의 아픔과 현실을 온몸으로 직접 느끼면서, 오늘날 우리의 시대적 소명은 남북협력과 통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독일로 갔다.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었던 독일이 어떻게 통일을 이뤄낼 수 있었는지 공부했다.  서로 다른 두 국가 간의 통합은 결국 서로 다른 법률의 통합이기에 그 과정에는 수많은 법학자와 법률가들의 기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독일에서 어떻게 통일된 독일이 과거 분단 시기에 있었던 불법행위를 청산했는지 공부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북통일 과정에서 헌법을 새로 쓰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고, 이는 단순히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롭고 혁신적인 법제가 있을 때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순간이 될 것이었다.


법제라는 것은 여러 가지 법체계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비교법적 관점을 가져야만 했다.  우리나라 법과 같이 쓰여있는 법률을 기반으로 하는 '대륙법(Civil Law)'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법의 두 가지 근간 중 하나인 '영미법(Common Law)' 또한 배워야 했다.  그래서, 미국법을 공부하러 로스쿨에 갔다.  3년간 영어로 법을 배웠다.  우리나라와 달리 판사가 만드는 판례가 법이 되는 영미법 체계를 공부했고, 직접 미국 법원과 법률시장에서 일을 하면서 이를 익혀나갔다.  


그렇게 로스쿨을 마치고, 다시 로스쿨에 입학했다.  다시 한국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무슨 새로운 공부냐며, 돈이나 벌고, 결혼해서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겠냐며 모든 사람은 미쳤다고 이야기하지만, 헌법 1 수업을 들으면서 가졌던 꿈을 이루는 여정을 계속해서 시작하고 또 시작했다.  시대적 소명과 헌법적 책임, 그리고 꿈을 향한 10년의 공부는 그렇게 오늘까지 이르렀다.  이것들이 다시 쓰는 나의 자기 소개서에 들어갈 말들이다.


4.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었다

헌법이 제정된 뒤 72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전 세계가 등을 돌리고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지었던 분단된 민족 북한의 지도자와 함께 산책을 하고, 관계를 개선하여 다른 국가들과의 대화 재개를 도왔고, 우리나라는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로 신음하는 전 세계에 의료적·경제적·행정적으로 각종 도움을 주며 어려움에 고통받는 여러 국가들에 큰 도움이 되며 모두를 화평케 하고 있다.


1948년 오랜 식민지배를 마친 채 흙먼지로 뒤덮인 공터에 모여 헌법전문을 읽던 우리 선배들은 이런 대한민국을 꿈꾸며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한다고 말했던 것일까?  1948년 헌법전문을 읽던 우리 선배들은 과연 70여 년이 지난 후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대학 입학 후 첫 법학 수업에서 헌법전문을 처음 들은 지도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때 처음으로 구입했던 법전에는 2009년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고, 지금 나의 손에는 2020년이라는 숫자가 쓰인 법전이 들려있다.  가방을 메고 첫 수업에 가던 나는 결코 내가 그 이후로 10년이나 법학을 공부하게 될 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수업에서 읽었던 헌법전문을 통해 남북협력과 통일법제에 기여하는 법률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위해 10년 동안 법을 공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은 시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에겐 붓을 꺼내 헌법 전문을 적는 바로 그 시작이 있었고, 내겐 대학에 처음 들어가 헌법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향하던 바로 그 시작이 있었다.  헌법전문이 말하는 Peace Maker로서의 대한민국의 길이 지금도 진행 중이듯, 꿈을 향한 나의 길도 아직 진행 중이다.  아직 끝이 보이기는커녕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매일 흔들리고 있지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도종환 시인의 시 한 구절처럼 흔들리며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피어난 꽃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었다.



*커버사진: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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