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April Revolution)를 기념하며 다시 읽는 헌법
I. 서
1. 헌법 수업을 시작하는 첫 시간
학부 4년, 로스쿨 3년, 그리고 또다시 로스쿨을 거치면서 법학을 배우고 있다. 그 모든 과정들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학부 첫 법학 수업이었던 헌법1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갓 스무 살이 되었던 내게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그 장면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보통 헌법을 생각하면, 우리는 헌법 제1조를 떠올린다. 잘 만들어진 1,000만 영화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 국민은 그 어떤 나라의 사람들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우리 국가의 헌법 제1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헌법 제1조를 배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초반 2-3주간 우리는 헌법 제1조가 아닌 법전을 폈을 때 가장 처음에 나오는 헌법전문에 대해 공부했다. 헌법의 본문 앞에 위치해있고, 중간에 마침표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짧은 문장을 교수님은 왜 몇 주씩이나 읽으셨던 것일까?
여러분 반갑습니다. 법전 다들 가져오셨죠? 자 첫 페이지를 펼쳐보세요. 아 아니 헌법 1조 쓰여있는 그 페이지 말고, 그 앞 장입니다. 네 그렇죠, 헌법전문이라고 쓰여있는 바로 거기입니다. 자 읽어보겠습니다.
2. 헌법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II. 헌법전문
1. 개괄
헌법전문은 헌법의 가장 앞에 위치한 짧은 하나의 문장이다. 그 문장 속에는 헌법 제정과 개정의 역사, 배경, 유래 등이 적혀있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정말 여러 가지 중요한 가치들과 역사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헌법전문은 헌법의 본문 앞에 위치한 부분을 의미하는데, 헌법 제정과 개정의 역사적 배경, 유래 및 헌법제정권력의 소재를 밝히고 있고, 나아가 간접적으로 국민주권의 이념을 표현하고 있다. 한수웅, 『헌법학』, 105쪽.
2. 효력
그런데, 헌법전문은 헌법의 가장 첫 부분에 짤막하게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과연 이 헌법전문이 헌법 제1조와 같은 헌법 본문과 같은 효력을 갖는지 아니면 다른 효력을 갖는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헌법전문이 헌법 본문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헌법전문을 가지고 헌법적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두고 많은 학자들과 법률가들은 대립을 이어나갔고, 각 국가 별로 다른 의견을 갖게 되었지만 크게 두 가지 갈래로 이를 설명할 수 있다.
(1) 학설
① 효력부인설
효력부인설은 헌법전문이 역사적 설명이나 유래, 목적과 같은 것을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주로 영미헌법학자(K.C. Wheare, E.S. Corwin 등)들이 이 견해를 택하고 있는데, 미국의 헌법전문(Preamble)은 별 내용이 없고, 간략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Jacobson v. Massachusetts 판례에서 이러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Jacobson v. Massachusetts, 197 U.S. 11 (1905).
The United States does not derive any of its substantive powers from the Preamble of the Constitution. It cannot exert any power to secure the declared objects of the Constitution unless, apart from the Preamble, such power be found in, or can properly be implied from, some express delegation in the instrument.
Jacobson v. Massachusetts, 197 U.S. 11 (1905)
② 효력인정설
효력인정설은 헌법전문이 헌법제정권력의 소재를 밝히고, 국민의 결단으로서 헌법의 본질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규범적 효력을 가진다고 보는 입장이다. 독일, 프랑스,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판례 및 다수설의 입장이다.
(2) 우리나라의 판례
우리 헌법재판소는 이미 1989년 초기의 판례(1989.9.8. 88헌가6)에서 헌법전문의 규범적 효력을 인정하였고, 지금에 이르도록 이러한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에 있는 내용을 본문의 내용과 완전히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는 판결도 존재했던 만큼 이를 제한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을 위해 아래 해당 판결들의 본문을 인용한다. 천천히 읽어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헌법 전문은 헌법의 이념 내지 가치를 제시하고 있는 헌법규범의 일부로서 헌법으로서의 규범적 효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는 헌법소송에서의 재판규범인 동시에 헌법이나 법률해석에서의 해석기준이 되고, 입법형성권 행사의 한계와 정책결정의 방향을 제시하며, 나아가 모든 국가기관과 국민이 존중하고 지켜가야 하는 최고의 가치규범이다. 우리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하여, 대한민국헌법이 성립된 유래와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2006.3.30. 2003헌마806
“헌법전문에 기재된 3.1정신”은 우리나라 헌법의 연혁적ㆍ이념적 기초로서 헌법이나 법률해석에서의 해석기준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에 기하여 곧바로 국민의 개별적 기본권성을 도출해낼 수는 없다고 할 것이므로, 헌법소원의 대상인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2001.3.21. 99헌마139
헌법은 그 전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고 규정하고, 제11조 제1항에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여 기회균등 또는 평등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바, 평등의 원칙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최고원리로서 국가가 입법을 하거나 법을 해석 및 집행함에 있어 따라야할 기준인 동시에, 국가에 대하여 합리적 이유없이 불평등한 대우를 하지 말것과, 평등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는 모든 국민의 권리로서, 국민의 기본권중의 기본권인 것이다. 1989.1.25. 88헌가7
헌법은 국가유공자 인정에 관하여 명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나 전문(前文)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의 공헌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임을 선언한 것이고, 그렇다면 국가는 일제로부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공헌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는 응분의 예우를 하여야 할 헌법적 의무를 지닌다. 2005.6.30. 2004헌마859
3. 소결
우리나라 헌법의 가장 첫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헌법전문은 그 자체로 규범적 효력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는 곧바로 국민의 개별적 기본권성을 도출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판례에 따르면 헌법전문은 그 자체로 헌법적 의무를 담고 있다고 보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래서 헌법전문은 헌법의 본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고, 그에 따라 헌법전문에 자신이 원하는 문구를 넣고 원치 않는 문구를 빼고자 하는 시도들이 우리 헌정사에서는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이루어질 것이다.
간략히 헌법전문에 대해 살펴봤으니 다시 글의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교수님은 왜 이 헌법전문을 읽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을까? 도대체 어떤 부분이 한 법학자이자 한 시민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단 말인가!
III. 헌법의 제정과 개정의 주체는 누구인가
1. “우리 대한국민은...”
사실 교수님과 함께 헌법전문을 봤던 2-3주의 시간 동안 앞서 이야기했던 판례들이나 학설들에 대해서는 크게 기억나지 않는다. 교과서를 10분만 다시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며 나아가 크게 고민할 것도 없는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열변을 토하면서 집중했던 한 단어만큼은 기억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아마 평생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며 이 단어를 기억할 것이다.
교수님은 헌법전문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한 단어에 집중하셨다. "대한국민"이라는 단어 말이다. 그리고, "대한국민"을 설명하고 다시 읽으시면서 울컥하며 수업을 잠시 멈추실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2.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국민
사실 법을 좀 배웠다고 하는 법학도들도 헌법전문 저 자리에 위치한 단어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국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같은 자리에 '대한민국'을 넣어서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대한민국은"이라는 말이 더 친숙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두 가지는 상당히 다른 차이점을 가진다. 대한민국이 선포하는 것과 대한국민이 선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3. 헌법 제정의 주체로서의 대한국민
대한국민이 헌법의 제정을 선포한 것은, 이 헌법이 국민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헌법 제1조에서 규정하는 것에 앞서 헌법은 그 첫 부분에서 이를 천명하는 것이다. 바로 이 사실이 한 사람의 대한국민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것이다.
헌법전문은 대한민국헌법의 성립과 제정 및 개정의 역사를 밝혀 주고 있다. 또한 헌법의 제정과 개정의 주체가 대한국민임을 밝힘으로써 국민주권주의원리와 헌법제정권자로서의 국민을 천명하고 있다. 성낙인, 『헌법학』, 122쪽.
IV. 결어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4.19 혁명 기념일을 맞아 오래간만에 헌법전문을 펼쳤다. 부정선거를 보고서 시민들이 일어나서 당시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렸던 혁명의 날이었던 그 날의 4월 19일. 다른 부분이 아닌 “대한국민”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머물게 된다. 교수님 생각이 난다. 괜스레 졸음을 이겨내며 헌법1 수업을 듣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앞다퉈 나라 사랑을 외치는 요즈음이다. 헌법전문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힌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이웃들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나도 헌법전문의 단어를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힐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교수님은 스스로의 이름을 헌법 전문의 단어 ‘대한국민’ 뒤에 넣어서 읽어보자고 하셨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나 대한국민 OOO은...”
나와 상관 없었던 헌법이 ‘내 헌법’이 되는 순간이다. 헌법 전문에 쓰인 대한국민이라는 단어에는 우리 모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렇게 헌법을 다시 읽으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